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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2. 가야(가라)의 강역 (2) 가야(가라)의 왜 진출(영토) 본문

여러나라시대/가야(가라)

2. 가야(가라)의 강역 (2) 가야(가라)의 왜 진출(영토)

대야발 2024. 12. 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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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교수는 5세기 초 일본열도를 정복한 기마민족의 주체 이름을 가라(加羅), 특히 금관가라(金官加羅) 기마부대와 그 연합 세력이라고 특정해 설명하였습니다.

 

 

 

AD 399년에 백제 아신왕은 신라를 병합하고자 백제·금관가야·왜의 동맹을 맺어 3국 연합군을 편성했다. AD 399년에 왜는 기병이 없이 모두 보병이었다. 백제·금관가야·왜의 연합군은 신라군을 격파해 400년에 신라 수도 경주를 점령했다.

 

 

그러나 신라 왕이 고구려에 구원을 청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5만 명의 동아시아 최강의 기병 부대를 남하시켜서 백제의 3국 연합군을 참패시켰다. 백제 4만 명의 보병은 대부분 전사하고 포로가 8000명이었다니 그 참패를 추정할 수 있다. 금관가라의 기병부대와 왜 보병도 참패해, 금관가라의 수도 김해까지 점령당했다.

 

 

그 후는 어떻게 됐을까? 백제 패잔병 중 보병의 희생은 막심했지만 기병부대 패잔병은 백제로 돌아갔을 것이다.

 

 

살아남은 왜군 보병은 물론 일본열도로 귀환길에 올랐을 것이다.

 

 

막강했던 금관가라 등 가라 기병부대들은 어떻게 됐을까? 김해 수도까지 점령당하고 갈 곳이 없는 가라 주력 기병부대는 패전한 왜 보병과 함께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로 들어갔다고 본다. 보병전에서는 아직도 막강한 대규모 가라 기병부대가 왜 원정보병과 연합해 일시에 일본열도에 상륙한 것이다. 일본열도에서 5세기 초부터 갑자기 출토되는 다수의 가라 마구가 이를 증명해준다.

 

 

 

 

가라 기마민족의 일본열도 정복설을 보여주는 유물들. 왼쪽은 3세기 대가야의 철갑 기병 출토 유물. 오른쪽은 이와 유사한 5∼6세기 일본열도에서 출토된 가라식 투구(위)와 말가리개(아래).




필자는 5세기 초 일본열도를 정복한 기마민족의 주체는 금관가라 기병 부대를 중심으로 한 ‘가라’ 기마부대라고 본다. 즉 가라 기마민족의 일본열도 정복이 되는 것이다. 가라의 기마문화와 기병부대의 계보는 부여(夫餘)의 그것이다. 기원까지 넣으면 부여·가라 기마민족의 일본열도 정복이 되는 것이다. AD 5세기 초 일본에 들어간 가라 기병부대는 일본열도를 일거에 휩쓸 막강한 기마부대는 아니었다. 광개토대왕 기병부대와의 전투에서 패전한 기병부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라 기병부대는 일본열도의 한반도 가까운 지방에서 거의 20년간 양마와 철제무기 제조 등 기병부대 실력을 증강한 후 동정(東征)해 야마토 소왕국의 정권을 장악했다고 본다. 이때 정권을 교체해 왕이 된 세력은 ‘금관가라계’ 기병무장세력으로 추정된다.



이때 야마토 소왕국의 정권을 교체해 새 왕조를 시작한 왕은 누구일까? 일본의 고문헌 자료가 완전히 결여된 시기이므로, 야마토 왕이 중국왕조에 보낸 조공사신에게 중국 황제들이 내린 ‘왜5왕’의 칭호에서라도 흔적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421년경 찬(讚) 세력이 이전의 ‘변진미오야마나·부여·임나’ 세력으로부터 무력으로 정권을 교체해 야마토 소왕국의 권력을 장악해 새 왕조를 연 ‘금관가라’ ‘가라’ 세력이라고 본다. 그러나 송(宋)나라는 이 왕조교체와 새 왜왕을 공인해주지 않았다.

 

 

새 왕조는 438년 진(珍)왕 때 송나라로부터 ‘왜국 왕’으로 인정받았다. 이어서 제(濟)의 아들 무(武) 때는 막강한 기병부대로서 일본 통일을 수행했다고 본다. ‘왜 5왕’은 모두 가라(특히 금관가라) 기병부대장 계보라고 추정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AD 451∼479년 사이에 왜왕 무가 중국 측에 대해 조공사절을 연달아 파견하며 정복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송서(宋書) 왜국전에 보면, AD 478년에 “왜왕 무가 송 황제에게 표문을 올리자 안동대장군(安東大將軍)의 호칭을 내리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듬해 AD 479년에 야마토의 무왕은 남제(南齊)의 고제(高帝)로부터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의 칭호를 받았다.

그로부터 23년 후인 AD 502년에 야마토 무왕은 양(梁)의 황제로부터 정동장군(征東將軍)의 칭호를 받는다. 필자는 야마토 소왕국에서 제왕과 무왕이 AD 451∼AD 479년에 동정을 감행해 대부분 통일을 달성해서 야마토 고대국가를 수립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본열도의 소국들을 다수 통일한 야마토국의 무왕은 누구인가? 일본역사의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5세기 이후 일본 야마토 왕족은 금관가라 및 가라 기마부대장 왕족의 후예이며, 척족은 5세기에 그 왕족에 결합된 백제 기마부대장의 후예임을 지적하는 바이다.

출처; <신용하의 지식카페>5세기 부여·가라 기마민족 日열도 정복…‘임나일본부설’은 날조 :: 문화일보 munhwa2020-09-23 

 

 

 

 

윤명철교수는 우수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가야인들은 함선을 거느리고 대한해협을 계속 건넜고, 4세기 무렵에는 관서지방인 야마토 지역까지 진출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 야마토 지역까지 진출

가야는 농업과 수로망이 발달한 낙동강 유역과 어업 생산력이 좋으며 무역에 적합한 남해안을 터전 삼아 12개 이상의 소국으로 출발했다.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왕국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해양 무역을 활용해 일찍부터 일본 열도로 진출했다.

 

 

부산 대성동에 있는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말의 가야 목곽묘들에서는 철제갑옷과 투구, 마구류, 가죽방패 등이 나왔다. 2호분에서는 대형 철덩이 150점, 철칼 등이 발견돼 기마문화가 존재했고 무역이 활발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파형(바람개비) 청동기물, 통형 청동기물 같은 일본제로 알려진 유물도 출토돼 혼란을 일으켰지만, 제작 시기와 수준을 고려해 가야가 원류라는 주장(김태식)이 있다. 설사 일본제라고 해도 상호 교류하는 해양의 메커니즘 속에서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 상도고분에서 발견된 6세기께 황금장식 마구들과 복원된 기마호족상. 당시 일본 야마토 조정이 이 지역 호족에게 전해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즈모 지역은 가야인과 신라인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다.

 



우수한 철제무기로 무장한 가야인들은 함선을 거느리고 대한해협을 계속 건넜다. 4세기 무렵에는 관서지방인 야마토 지역까지 진출했다.

 

 

일본 열도에서는 4세기부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벼농사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경제력이 급상승하고, 제철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구도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지배자의 성격을 반영하는 큰 규모의 전방후원분들이 만들어졌는데, 부장품들은 주로 가야와 연관됐다.

 

 

 

4국의 일본 열도 진출과 해양 경쟁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의 철제 말투구

 
 
 
 

 

5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 질서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에선 위진 남북조시대로 접어들었고,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등은 중국의 분단을 이용해 해양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따라서 해양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으며, 고대 국가의 규모와 활동 범위도 확장됐다. 고구려는 팽창의 기회를 맞아 북방 진출을 추진하는 한편 400년에는 광개토태왕이 신라의 구원 요청을 명분 삼아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남진시켰다.

 

 

백제·가야·왜 세력은 고구려에 대패했고, 이때 금관가야의 일부는 고령의 대가야와 함안의 아라가야 등으로 흡수됐지만 일부는 일본 열도로 건너갔을 것이다.

 

 

고구려도 404년 대방계 전투 이후에는 왜군을 쫓아 남해와 동해남부를 건넜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 또한 고구려의 압력에 대응하고, 무역을 목표로 일본 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활발하고 역동적인 4국의 일본 열도 진출 시대가 도래했다.

 
 
 
 
일본 속 가야의 흔적

일본 열도에서 새로 축조되는 전방후원분들은 더욱 커지고, 내부도 횡혈식으로 바뀌면서 철제무기와 마구들, 금은 세공품들이 매장됐다. 2600여 기가 남은 전방후원분 분포를 보면 대략 4~5개 지역에 집중됐다.

 

 

또한 5세기 후반에 ‘기히(吉備)의 난’, 6세기 전반 규슈에서 ‘이와이(磐井)의 난’이 각각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통일되기 이전에 4~5개의 강력한 세력이 존재했으며, 중심은 관서 지역이었음을 알려준다.

 

 

이 왜 세력들은 백제와 무역 및 인적·문화적 교류가 빈번했고, 사료에서 보이듯 정치·군사적으로도 관련이 깊었다. 또 ‘왜국’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일부는 전남의 전방후원분들에서 나타나듯 한반도 남부에도 진출했다.

출처; 우수한 철제무기로 3 · 4세기 일본 진출한 가야…고구려·백제·신라 등과 4국 해양 경쟁시대 열어 | 생글생글 (hankyung.com)2020.11.23

 

 

 

 

윤명철교수는 양안 국가설을 제안하였습니다.

 

 

 

5세기 들어 가야 세력은 남해 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 무역의 이익이 분산되면서 그 위상이 약해졌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일본 열도로 더 진출했다. 가야는 원격 통치하는 양안(兩岸) 국가를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열도 북부에서 발견된 유물과 건국신화 등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5세기 들어 동아지중해에서는 항로 확보 등을 둘러싼 고구려·백제·신라·가야·왜 등 해양력 경쟁체제가 만들어졌다. 국가들의 역학관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생겼다. 가야 세력들은 남해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 무역의 이익이 분산되면서 그 위상이 약해졌다. 해양국가인 데다 연맹체제를 벗어나지 못해 효율적인 관리와 조직적인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가야의 핵심 세력은 이 한계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일본 열도로 더욱 진출했다. 남은 세력들 가운데 낙동강 중류의 수로망을 장악한 대가야와 남강·남해안의 항구를 가진 아라가야는 고령의 지산동 32호, 44호분과 함안의 말이산 34호분에서 기마용 장비들이 출토된 것처럼 제철문화를 발전시켰고, 일본 열도와 교류했다.

 

 

 

고령 대가야 박물관에 재현된 제철로

 

 

 

 

또 하나가 양안 국가설(윤명철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1996년)이다. 나는 1994년에 배로 지중해와 흑해를 왕복하면서 그리스의 폴리스들,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등이 바다를 사이에 둔 ‘양안(兩岸) 국가’ 또는 식민 모국(母國)과 자국(子國)의 2중 체제였음을 깨달았다. 또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스페인의 ‘지브롤터’는 영국 영토이고, 반대로 아프리카의 ‘세우타’는 스페인 영토라는 사실에도 놀랐다. 그렇다면 가야는 원격통치를 하는 양안 국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열도에 오랫동안 진출하면서 교류했고, 대한해협은 교통과 통신이 가능할 정도로 짧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열도 북부에서 발견된 유물들과 건국신화 등은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

 

 

 

 

가야국의 무역 상품이던 야광 조개국자(고령 대가야박물관)

 

 

 

가야계의 일본 고대국가 형성

7세기 중반 신흥 국가로 탄생한 일본은 8세기 초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하면서 첫 부분에 복잡한 주체 세력들의 계보와 정통성을 확립하는 창세신화와 건국신화를 기록했다. 즉, 태양여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의 손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삼종신기(거울·칼·곡옥)를 갖고 다카마노하라(하늘)를 떠나 히우가(日向)의 구시후루(觸峰, 久士布流多氣)로 하강한다. 그리고 후손인 짐무(神武)가 동쪽으로 진격하면서 야마토 지역까지 정벌한 후 초대 천황이 된다.

 

 

이 신화는 기본 줄거리가 단군신화와 김수로왕 신화처럼 천손강림 신화다. 내용은 물론이고 붉은 천에 쌓여 내려온 지명도 거의 비슷하다(구시후루는 구지봉과 음이 비슷함). 이 때문에 가야계 집단이 일본 열도에 도착해 고대국가를 형성한 과정으로 해석한다. 물론 정치력이나 군사력, 그리고 국제질서를 고려하면 주체는 원가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한 주체는 당시 상황을 모호하게 서술함으로써 종속적이었던 왜 집단을 주체인 것처럼 해석하는 ‘임나일본부설’과 ‘기마민족국가설’을 낳게 만들었다(천관우).

 

 

가야계 지명은 지금도 쓰시마(대마도)나 규슈 북부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천손을 모시는 기리시마 신궁 근처에는 ‘가라구니다케(韓國岳)’가 있다. 고대부터 항해자들이 처음 도착하는 규슈 북부에는 ‘가라의 항구’라는 뜻인 ‘가라쓰’가 있는데, 원래는 ‘한진(韓津)’으로 사용했으나 14세기부터 ‘당진(唐津)’으로 바꿔 버렸다.

출처; 가야의 한반도 동남부와 일본 서쪽지역 지배..대한해협 사이에 두고 원격통치한 것으로 봐야 (daum.net)2020. 11. 30.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김해 금관가야의 철기 유물들. 투구와 갑옷, 말투구 등이 보인다. 말투구는 국내에서 처음 발굴된 것으로 챙과 얼굴, 볼 가리개가 완전히 갖춰진 실전용이다. [사진 복천박물관]

 

 

 

가야 유민들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스에키.

출처; [이훈범의 문명기행] 후쿠오카에 웬 가야산? 열도 곳곳엔 5세기 가야인 흔적 | 중앙일보 (joongang.co.kr)2019.02.16

 

 

 

 

 

 

규슈 지방에서도 남쪽 깊숙한 오지인 규슈의 남단인 가고시마현 기리시마 인근 연산지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한국악(韓国岳)’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습니다.

 

 

이진아 환경 · 생명 저술가는 이 산에 ‘가락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전해져 내려오는 까닭을 두 가지 분명한 사실

 

- 첫째, 규슈의 지형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것.

둘째, 고대 해양족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영토를 구축하는 방법을 이해할 것. - 을 고려하면,

 

가라쿠니다케는 왜(원주민 집단)과 가라(해양세력)집단 사이의 경계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규슈 지방에서도 남쪽 깊숙한 오지인 규슈의 남단인 가고시마현 기리시마 인근 연산지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한국악(韓国岳)’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일본 규슈에 위치한 한국악(韓?岳)

 

 

 

 

‘가라쿠니다케’는 ‘가라’는 ‘가락국’ 혹은 더 폭넓게 ‘가야’를 지칭하는 일본어다.

‘쿠니’는 ‘국가’라는 뜻,

다케는 험난한 산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라쿠니다케’라고 불려온 이 산은 정확히 ‘가락국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갖는 것이다. 

 

 

 

쓰시마 건너 바로 코앞인 규슈 북부 해안지대와 가야의 연관성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이렇게 규슈 남부 깊숙이 오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에 도대체 왜 ‘가락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규슈는 마치 가야를 향해 열려 있는 것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즉 섬 중앙에서 약간 동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산지가 몰려 있어서, 가야가 있는 서북쪽으로는 큰 강과 그 일대의 비옥한 평야들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가라츠, 나가사키, 구마모토 등 규슈의 중심지들은 하나같이, 배를 타고 가락국에서 출발한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평야에 자리 잡은 거주지들이다. 오른쪽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가야가 쓰시마를 영토 혹은 파트너로 삼았다면 거기서 출발해서 가라츠, 나가사키, 구마모토까지 확장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가라츠는 마츠우라 강, 나가사키는 혼묘 강, 구마모토는 구마 강 하류의 중심지이므로, 이들을 영토로 했다면 여기서 이 강들을 타고 이어지는 중상류의 평야 일대까지 장악하는 것 역시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화산지형으로 산세가 급하므로, 어디든 산이 막혀 있는 곳을 가야인들이 점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가락국이 해상국가로서 규슈에 진출해서 영토를 만들었다면, 아무리 좁게 잡아도 왼쪽 지도 빗금 친 부분 정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규슈 에비노 고원에서 발견된 가야의 흔적

 

마츠우라 강에서 구마 강까지 하천 유역은 장악하기 쉬워도 그 밑의 센다이 강은 좀 어려웠을 수 있다. 강의 중하류 쪽 양안이 협곡을 이루고 있어서, 원주민의 협공을 받는다면 통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험산이어서 그리 많은 원주민이 살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어찌어찌 중상류에 형성된 에비노 평야까지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비노 평야의 상류에는 에비노 고원에 이어 가라쿠니다케가 있다. 아마 바닷사람 가야인의 행보는 에비노 고원을 앞에 두고 주춤했을 것이다.

 

 

 

그보다 남쪽으로는 가라쿠니다케가 포함된 기리시마 연산지대가 가로막고 있다. 가야인에게 익숙한 바닷길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남쪽부분의 가고시마만은 특이하게 바다가 깊숙이 육지 안으로 함입된 지형이다. 또한 그 주변은 비교적 비옥한 평야지대여서 많은 원주민들이 살았을 것이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배를 타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이런 지형이면 철통방어가 가능하다. 따라서 가야의 영토 경계는 센다이강 하구에서 에비노 정도에서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 원주민이 살던 땅에, 한반도 남부에서 온, 그들보다 파워가 컸던 해양족들이 밀고 들어오자, 원주민은 고산지대, 협곡 등 보다 방어하기 유리한 지역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을 것이다. 원래는 동남아시아 계열이었던 대만 원주민들이 중국 본토로부터 한족들이 들어오자 그들에게 밀려서 높고 험한 산 속에 사는 고산족(高山族)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은 해양국의 식민지가 된 지역에서는 비일비재 일어났었다. 그럴 경우 대개 해양족이 넘기 어려운 높고 험한 산이 경계가 된다.

 

 

가야 본토와 그 해외 영토(의 일부?)

 

 

 

 

이렇게 본다면 《삼국유사》에서 사라진 가락국의 남쪽 경계의 이름은 ‘에비노’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보면 여러 가지가 설명이 된다. 에비노 평야지대에 충적물을 공급하는 에비노 고원은 가라쿠니다케의 정상으로부터 불과 2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며, 사실상 가라쿠니다케의 중턱 기슭에 해당된다. 제법 큰 강으로 이어지는 에비노 평야까지는 가락국 사람들이 들어올 만했지만 에비노 고원에서 가라쿠니다케에 이르는 육지의 험로를 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라쿠니다케는 이 두 집단 사이의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여왜접계(與倭接界),” 즉 “왜와 더불어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표현이 말이 된다. 왜의 입장에서 자신들과 가락국 영토 사이에 놓인 산을 ‘가락국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가락국이 동시대의 다른 해양국가들처럼 바다 건너에도 본토 못지않게 너른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자연스럽다. 그리고 만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가락국 남쪽 경계로서 ‘에비노’, 혹은 일본 열도 깊숙한 곳의 다른 지명이 쓰여 있었다면, 후대 일본의 역사가들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그걸 부인하고 증거를 없애려고 노력했으리라는 것도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처;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가야 남쪽 경계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참고자료>

 

 

 

고대 해상왕국 가야 바닷길 통해 일본 열도로 넘어간 이유  - 주간조선 (chosun.com)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가야사 편)] 일본인 유전자 지도에 담긴 역사  - 시사저널 (sisajournal.com)

 

 

 

철의 생산과 교역 활성화를 위한 호혜적 공존, 가야와 우한  - 주간조선 (chosun.com)이진아.2020.12.01

 

 

 

‘제철왕국’ 금관가야가 규슈로 진출한 까닭은  - 주간조선 (chosun.com)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3~4세기 日 진출한 가야..해협 사이에 두고 원격통치 가능성 (daum.net)2019. 12. 27. 

 

 

 

美 학자 코벨, '일본왕가는 가야인들이 세웠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18.06.01

 

 

 

 

규슈의 가락인 석상은 왜 얼굴이 사라졌을까  - 주간조선 (chosun.com)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75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 3편- 일본역사의 시조가 된 금관가야  - 파이낸셜투데이 (ftoday.co.kr)

 

 

 

 

 ˝우리 조상 가라족(韓族)이 일본인 조상˝ (breaknews.com)박병식.2007/12/04

 

 

 

 ˝일본 황실은 왜 韓神을 떠받들고 있나?˝ (breaknews.com)박병식.2007/11/26

 

 

 

 

 

'말'을 탄 가야인, 마쯔리에 남은 역사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50

 

 

 

"거북을 타고 뱀의 인도를 받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58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묘켄'은 누구일까?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93

 

 

 

벼와 연꽃, 철제 농기구... 가락국이 섬나라에 가져간 선물들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27

 

 

 

일본의 민담 캐릭터 '갓빠'에 드리워진 가야의 그림자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62

 

 

 

'갓빠'와 '가랏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적 해석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295

 

 

 

규슈에 '가락국산'이 있는 이유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31

 

 

 

규슈에 '가락국산'이 있는 이유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363

 

 

 

'에비야' 벌판 전투와 규슈의 에비노 고원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03

 

 

 

다른 듯 같은 운명, 가야와 로마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94

 

 

 

5만년 전 한반도로의 인구 이동과 가야의 건립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05

 

 

 

고천문학 지도 한 장에서 출발한 '가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39

 

 

 

고대 철기 문명의 연결고리, 한반도 가야와 인도 부다가야 - 주간조선

https://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77

 

 

 

 

 

 

˝일본은 가야 땅, 한-일 이제 미워말자!˝:플러스 코리아(Plus Korea)2008/01/14

 

 

 

 


[이덕일의 한국통사] 삼국사기에서 갑자기 사라진 가야 미야자키현 배낭여행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고분군

https://youtu.be/uYDF-UmhxvY?list=PLRAmvpNm4pmkVYM9AZD9e8laWwxslWUhT 

 

 

 

 

[이덕일의 한국통사] 일본열도에 널린 가야계 유물과 유적

https://youtu.be/VyNtiOUq7G4?list=PLRAmvpNm4pmkVYM9AZD9e8laWwxslWUhT 

 

 

 

 

[이덕일의 한국통사] 3세기 일본 천황가 발상지 사이토바루 고분군에서 김해 지역에서 나오는 가야 유물과 동일 북한학자 김석형 분국설로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임나일본부설 폐기돼야 #3

https://youtu.be/UPCoMcvXo2E?list=PLRAmvpNm4pmkVYM9AZD9e8laWwxslWU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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