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3. 가야(가라) 고고학 (6) 함안 아라가야 왕성 추정 유적 본문
2019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은 1587년 편찬된 함주지(咸州誌)에 옛 나라에 터가 있던 곳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여겨져 왔습니다.
“백사리 북쪽에 옛 나라의 유허(遺墟)가 있는데 주위 둘레가 1606척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가야국의 도읍이라 한다.”
1587년 편찬된 조선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경남 함안군 가야리 일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곳에는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일제강점기 이래 각종 조사에서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한국 고대사의 한 주역으로 꼽히는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됐습니다.
2018년 사유지 경작과정에서 성벽의 일부가 발견되어 실체가 드러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대에 만들어진 토성과 목책, 수혈건물지 등 중요 시설물이 확인됐습니다.
(함안=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7일 함안 가야읍 가야리에서 개최한 발굴조사 설명회에서 공개된 토성 성벽.
"아라가야 왕성을 발견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조사 지역 일대가 왕궁터로 알려진 만큼 중장기 조사가 필요합니다."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그간 문헌과 구전을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된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5∼6세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8.5m, 폭 20∼40m인 성벽과 성벽 위에서 확인된 2열 나무기둥, 건물터, 구덩이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공개됐다.
성벽은 나뭇가지나 잎을 올리고 태운 목탄층을 만들고, 그 위에 차곡차곡 흙을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을 사용해 공들여 축조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넓은 성벽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기둥 열이 나왔고, 구덩이 유구 안에서는 인근 말이산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사한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를 비롯한 각종 토기가 출토됐다.
연구소 측은 지금까지 가야 권역에서 조사된 토성 높이가 2∼4m였고, 성벽 축조 과정에서 목탄층이 드러난 사례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아라가야 왕성 실체를 드러낼 실마리를 찾았다고 역설했다.
게다가 아라가야 권역에서는 말이산 고분군 같은 무덤만 조사된 상황에서 생활유적을 발견한 이번 발굴은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https://v.daum.net/v/20180607160354258 연합뉴스 2018. 6. 7.)
강 연구실장은 "이번에 발견된 수혈은 굉장히 특이하다. 수혈 내부에서 부뚜막 시설을 확인했고 고분군이나 의례공간에서 확인되는 기대(器臺·그릇받침)가 확인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 "구릉을 이용한 성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발견된 왕성(8.5~10m)과 몽촌토성이 지형상 유사한데 성토한 구간만 보면 몽촌토성이 6m 정도여서 그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함안 인근지역 토성들과 비교해 보면 합천 성산토성이 4.1m, 양산 순지리토성 4m, 김해 봉황토성이 2.8m로 이번에 발견된 토성이 가장 높다.
아라가야 왕궁지 수혈내 유물© News1
또 "길이로 따지면 50m 내외를 조사해 왕성의 실체를 확인했지만 이 주변 일대가 왕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조사하게 되면 최고 지배층의 생활상이라든지, 왕성축조 토목기술, 방어체계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경남 함안 가야리의 아라가야 왕성 추정지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 높이 8.5m, 폭 20∼40m의 당대 최대 규모의 토성이 확인됐다. 이만 한 규모의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막강한 정치권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
◆높이 8.5m… 당대 최대 규모의 토성
토성을 축조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쌓은 흙이 밀려내려가지 않도록 나무기둥을 설치했으며 지반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 나무를 태우면서 만들어진 목탄층이 확인됐다. 연구소 강동석 학예연구관은 “땅을 다지기 위해 나무를 태운 흔적이 발견된 다른 사례가 없다. 큰 공을 들여 토성을 만든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석을 파서 조성한 긴 네모꼴의 수혈(사진 위)과 의례 공간에 주로 발굴되는 통형기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
◆“막강한 권력의 존재 보여주는 증거”
토성 내부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과 함께 건물터, 구덩이 등이 발견됐다. 건물터는 현재로선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상건물지(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 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암석을 파서 조성한 구덩이는 긴네모꼴로, 용도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구덩이 안에서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고, 주로 고분 등 의례 공간에서 나오는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가 출토돼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붉은색의 연질토기가 나온 것도 주목된다. 강 연구관은 “이전의 가야 관련 유적 발굴은 대부분 고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서 연질의 생활형토기가 드물었다”며 “발굴이 좀 더 진행되면 가야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소 측은 “이번에 확인된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권력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다. 아라가야가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하였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최고지배층의 생활문화와 가양의 토목기술, 방어체계, 대내외 교섭 등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출처; 한국 고대사의 또 다른 주역 ‘아라가야 왕성’ 실체 첫 확인 | 세계일보 (segye.com)2018-06-07)
2021년에 아라가야 왕궁터에서 취사전용 공간이 확인됐습니다. 당시 가야 세력 간 교류를 이해할 수 있는 토기류도 함께 나왔습니다.
경사진 기반암을 길이 11m, 너비 5m, 깊이 80㎝ 정도로 파내고 내벽을 설치해 취사 공간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벽은 길이 8m, 너비 3.5m, 높이 15㎝ 정도다. 황갈색 점질토를 1~2㎝ 두께로 다졌는데 열을 가해 단단하게 만드는 불다짐 기법을 사용했다.
취사시설은 동서로 길이 5m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였다. 동쪽에는 아궁이를 두었고, 서쪽 배연부 사이에 구들을 설치했다. 다만 아궁이는 하단부만 남아 있어 정확한 규모와 형태는 파악할 수 없었다.
구들은 최대 길이 약 1m, 높이 약 50㎝의 평평한 돌을 놓았고, 외부를 회색 점질토를 발라 연기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다. 구들 내부의 평평한 돌로 볼 때 측벽과 같은 방법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연부는 깬돌을 가로로 눕혀 쌓아 만들었으며 연기가 잘 빠질 수 있도록 계단식으로 구축해 높이 차를 두었다.
취사시설 부지 외곽에 배연부와 가까운 곳에는 기반암을 원형으로 판 구덩이가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취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보고 있다.
건물지 내부에는 6세기에 볼 수 있는 원통모양그릇받침과 적갈색의 취사용 토기류가 출토됐다. 특히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물결무늬 장식, 원형의 창 등이 있어 가야토기의 공통적인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라가야만의 속성인 둥근 옥 또는 새 모양 창과 소가야의 특징인 점줄무늬 장식과 한 쌍의 장방형 창도 확인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아라가야와 다른 가야 세력의 교류와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조사는 2018년부터 진행했다.
(출처; 아라가야 왕궁터 주방에 웬 소가야 토기? | 서울신문 (seoul.co.kr)2021-06-10)
2022년에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항공 라이다(LiDAR) 측량과 고지형 분석에 기반한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리 유적의 둘레가 2.5k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 토성임이 밝혀져 국민적 관심을 모았습니다.
2024년 11월 11일 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함안 가야리 아라가야 왕성 추정 유적에서 가야의 성 안과 밖을 잇는 배수시설을 첫 발굴했다고 공개하였습니다.
1500여년 전후 아라가야의 왕성으로 알려진 경남 함안의 ‘가야리 유적’(사적)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시기의 토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배수 시설이 처음 확인됐다.
성의 안팎을 연결한 배수 체계의 확인은 가야 지역에서도 처음이다. 발굴조사에서는 당시 토기가 출토되고, 성벽의 축조 구조와 대지 조성과정 등도 새롭게 드러났다. 가야 토성의 운영 체제, 구조 등의 연구에 좋은 학술자료라는 평가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아라가야 왕성으로 추정되는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유적’에서 성 내부의 물을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석축 배수 시설을 가야문화권 유적에서는 최초로 확인하고, 성 내부의 대지 조성 과정, 성벽의 구조 등도 새로 밝혀냈다”고 11일 밝혔다.
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 발굴조사에서 나온 아라가야 당시의 토기(복원품).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석축 배수시설은 성 내부의 곡간지 지형(좁게 움푹 패어 들어간 지형으로 주변의 물이 모이는 곳)에서 확인됐다”며 “곡간지에 모이는 물을 성 밖으로 배수하기 위해 성벽을 통과해 설치된 양상”이라고 밝혔다. 돌로 쌓은 배수시설은 너비 1~3.5m, 남아 있는 길이는 16.5m다.
‘함안 가야리 유적’에서 확인된 성벽의 토층 단면.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성벽을 통과하는 부분은 너비 1m 내외로 좁게 만들어 뚜껑돌을 덮을 수 있게 했다. 특히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너비가 최대 3.5m까지 벌어지는 나팔 모양이다. 연구소는 “성 밖으로 나오면서 수로를 나팔 모양으로 벌어지게 만든 것은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토성의 배수 체계는 가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라고 밝혔다.
성벽은 네모꼴의 구조틀 속에 흙을 켜켜이 다져 쌓는 고대 토목기술인 판축기법으로 성벽의 중심(토루)을 만들고, 토루의 내외벽을 조성해 성벽을 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좁게 골이 진 성 내부의 지형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바닥 부분에는 부엽공법을 이용해 대지를 조성했다.
고대 토목기술의 하나인 부엽공법은 나뭇가지나 풀 등의 유기물들을 섞어 깔아 지반을 강화하는 공법으로 현대의 토목섬유와 같은 기능을 한다. 판축 토루의 너비는 5.5m, 내·외벽의 바닥 너비는 각각 12m, 판축 토루와 내·외벽을 포함한 바닥 부분의 전체 너비는 29.5m로 나타났다.
대지 조성층에서는 짧은 목 항아리(단경호), 솥 모양(부형) 토기 등이 발견됐다. 대지 조성과정에서 제사나 각종 의례 행위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는 성 내부의 배수 문제와 습하고 연약한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성벽과 배수 체계를 만든 고대 가야인의 뛰어난 토목 기술을 확인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출처; https://v.daum.net/v/20241111125643585 경향신문 2024. 11. 11.)
<자료출처>
https://v.daum.net/v/20241111125643585 경향신문 2024. 11. 11.
함안군-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아라가야 왕성유적 실체 규명 나선다 [함안소식] (daum.net)쿠키뉴스2023.02.15
아라가야 왕궁터 주방에 웬 소가야 토기? | 서울신문 (seoul.co.kr)2021-06-10
"앞으로 조사가 더 중요..아라가야 전성기 실체 다가갈 듯" (daum.net)뉴스1. 2018.06.07.
한국 고대사의 또 다른 주역 ‘아라가야 왕성’ 실체 첫 확인 | 세계일보 (segye.com)2018-06-07
https://v.daum.net/v/20180607160354258 연합뉴스 2018. 6. 7.
<참고자료>
함안 칠원산성 "아라가야 축조 토성·석성과 조선시대 석성 확인" (daum.net)2023. 5. 20.
아라가야 산성 성벽 규모·축조방법 처음 드러났다 | 연합뉴스 (yna.co.kr)2018-12-31
"함안 안곡산성, 5세기 아라가야시대에 축조…가야토기 출토" | 연합뉴스 (yna.co.kr)2017/12/23
함안서 아라가야 최후의 왕묘 추정 고분 발굴 | 연합뉴스 (yna.co.kr) 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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