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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겨레 력사학자, 력사서 (37) 박제상(朴堤上) 부도지(符都誌) 본문

우리겨레력사와 문화/우리겨레 력사학자, 력사서(2)

우리겨레 력사학자, 력사서 (37) 박제상(朴堤上) 부도지(符都誌)

대야발 2025. 3.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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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학자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징심록』 중 일부를 1953년에 박금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복원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징심록』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하고 있다.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의 복원본을 말한다. 『환단고기』처럼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신라 때 영해 박씨의 선조인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박제상 사후에 박씨 종가에서 필사되어 전해왔다. 조선시대 세조 이후에는 영해 박씨들이 숨어살게 되면서 숨겨졌다가, 김시습이 저술한 『징심록추기(澄心錄追記)』에 의해 원본 『징심록』과 그 속에 있던 『부도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지』는 1953년 울산에 있던 영해 박씨 55세손인 박금(朴錦, 1895~?, 본명 박재익)의 복원본을 말한다. 박금에 의하면, 해방 후 월남할 때에 여러 대에 걸쳐 전수받은 원본을 함경남도 문천에 놓고 왔고, 분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원본에 가깝게 남한에서 복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금은 해방 전에 동아일보 재직 시에 이를 번역연재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1986년 김은수의 번역본이 출간되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필사본. 오늘날 전하는 박금의 『부도지』는 1953년에 그가 필사하여 복원한 것으로 모두 33장으로 되어있다. 김은수는 1986년 이를 번역하여 출판할 때, 1장부터 26장까지를 『부도지』, 27장부터 33장까지를 『소부도지』라 하고, 여기에 김시습의 『징심록추기』와 박금의 『요정징심록연의후기』등을 보태어 4편으로 편집하였다.

 
 
 

『부도지』에 따르면, 마고성(麻姑城)은 마고가 사는 성으로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며, 천부(天符)를 받들어 선천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성의 가운데는 천부단(天符壇)이, 사방에는 각각 보단(堡壇)이 있다. 천부는 천리를 숫자로 표현하여 우주법칙을 설명한 것이며, 천부삼인(天符三印)이란 천지 본음(本音)을 본 뜬 것이다.

 

 

이 마고성에서 출발한 한민족은 마고 · 궁희 · 황궁 · 유인 · 환인 · 환웅 · 단군에 이르는 동안 천산 · 태백산과 청구를 거쳐 만주로 들어 왔으며, 이렇게 시작한 한국의 상고역사는 하늘과 함께해 온 천도적(天道的) 의미를 지닌다.

 

 

부도(符都)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1장부터 26장까지의 『부도지』는 황궁에서 단군을 거쳐 읍루(또는 단군가륵)까지의 7세(世) 동안 천부(天符)가 전해온 역사를 7천년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7천년의 역년이란 단군 가륵으로부터 소급하면 서기전 9,100여 년으로, 이는 황궁씨가 출발한 때이다. 그리고 27장부터 33장까지의 『소부도지』는 후삼한과 삼국의 이야기로부터 부도의 재건과 복본(復本)의 회복으로 끝을 맺고 있다.

 
 
 

『환단고기』에 비유되는 것처럼 아직도 전수과정의 의문점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라져 버린 인류 시원문화의 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한민족의 국통(國統)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1)

 
 
 
 

 

부도지(符都誌)는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저술했다는 사서인 《징심록》의 일부이다.

1953년에 그 후손인 박금(朴錦)이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되었고, 1986년 번역본이 출간되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 김시습에 의해 번역되었고, 그 필사본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없다. 현존하는 《부도지》의 내용은 원본의 내용을 연구했던 기억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박금의 본명은 박재익이며, 박제상의 55세손이다. 1895년 함경남도 문주(지금의 문천)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1925년~1934년)에는 동아일보 기자로서 활동했으며, 만보산 사건을 취재하기도 했다.

 

《징심록(澄心錄)》은 3교(敎) 15지(誌)로 되어 있다.

  • 상교 - 부도지(符都誌), 음신지(音信誌), 역시지(曆時誌), 천웅지(天雄誌), 성신지(星辰誌)
  • 중교 - 사해지(四海誌), 계불지(禊祓誌), 물명지(物名誌), 가악지(歌樂誌), 의약지(醫藥誌)
  • 하교 - 농상지(農桑誌), 도인지(陶人誌), 나머지 3지는 알 수 없다.

《부도지》외에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등을 복원했다고 하나 일반에 전해지지 않는다.

 

 

복원된 《부도지》에는 조선시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징심록》의 원본을 고대어에서 당시의 문장으로 적으면서 내력과 느낀 점을 덧붙였다.

 

 

박금씨가 《징심록》을 복원하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였다.

 

 

시대는 짐세, 선천, 후천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선천(先天)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짐세(朕世)라는 시대가 있었으며, 후천의 말기에 임검씨(단군)가 등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지방의 전설로 남아 있는 ‘마고’가 민족의 시조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소리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고, “오미의 화”로 말미암아 12부족이 나뉘게 되는 과정, 대홍수, 황궁·유인·환인·환웅씨의 계승과, 요와 순 임금에 의해 동방(단군조선)과 화하(하나라)가 분리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단군조선의 치세는 1천 년 간이며, 1천 년에 걸쳐 각 부족이 자리잡은 이후로 ‘단군조선을 포함한 치세’가 7천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부도지》에 기록된 한민족의 기원은 1만 1천 년보다 이전이 된다.(2)

 

 

 

 

박제상(朴堤上, 363년 ~ 419년 추정)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 은 신라의 충신이다. 자는 중운(仲雲), 호는 관설당(觀雪). 《삼국유사》는 김제상(金堤上), 《일본서기》는 모마리질지(毛麻利叱智)라고 기록하고 있다.

 

堤上, 毛末은 실제로 '돍맏/덝맏'이라고 불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堤(둑 제)와 毛(털 모)는 '둙/덝'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上(위/맏 상)과 末(끝 말)은 '맏/말'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모마리는 모말의 받침을 풀어서 발음한 것이며 叱智는 관직을 나타낸다.

 

이칠 갈문왕의 후손이라 하나 세대는 정확하지 않다. 삽라군(歃羅郡)의 태수직을 수행하였다. 눌지 마립간 즉위 2년(418년)에 왕의 명을 받아, 고구려에 볼모로 있던 눌지 마립간의 동생 복호(卜好)를 구하여 신라로 돌아왔으며, 이어서 야마토에 볼모로 있는 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하러 건너갔다. 왕제를 구출하여 신라로 보낸 후, 그를 신하로 삼으려는 인교 천황(允恭天皇)의 설득을 거절하다가 죽었다. 행적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편, 《일본서기》, 《동국통감》, 《문헌비고》 등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나, 각 기록의 내용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망부석(望夫石) 설화는,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을 그리워한 박제상의 부인에 얽힌 설화이다.

 

삼국유사》의 〈내물왕(奈勿王)과 김제상(金堤上)〉편의 중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王旣見寶海, 益思美海一欣一悲, 垂淚而謂左右曰. 如一身有一臂, 一面一眼, 雖得一而亡一, 何敢不痛乎. 時 堤上聞此言, 再拜辭朝而騎馬. 不入家而行, 直至於栗浦之濱, 其妻聞之, 走馬追至栗浦, 見其夫已在舡上矣. 妻呼之切懇, 堤上但搖手而不駐.

 

왕이 이미 보해(복호)를 만나자, 미해(미사흔)의 생각이 더하여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니, 눈물을 흘리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했다. “마치 한 몸에 팔이 하나인 듯, 한 얼굴에 눈이 하나인 듯, 비록 하나는 얻었으나 하나는 잃었으니, 어찌 감히 괴롭지 아니한 일인가.” 그때에 제상이 그 말을 들으니, 다시 절하고 하직하여 말을 탔다.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곧바로 율포(栗浦) 물가로 향하니, 그의 처가 이를 듣고, 말달려 율포로 좇아가니, 이미 지아비가 배 위에 올라있었다. 아내가 간절하게 부르나, 제상은 다만 손을 흔들며 떠났다.

 

같은 편의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初堤上之發去也, 夫人聞之追不及, 及至望德寺門南沙上, 放臥長號. 因名其沙, 曰長沙. 親戚二人, 扶腋將還, 夫人舒脚, 坐不起, 名其地, 曰伐知旨. 久後夫人不勝其慕, 率三娘子上鵄述嶺, 望倭國痛哭而終. 仍爲鵄述神母, 今祠堂存焉.

 

처음 제상이 떠날 때, 부인이 이를 듣고 좇았으나 미치지 못했으니, 망덕사 문 남쪽 모래사장에 이르러, 누워서는 크게 부르짖었다. 이로 인하여 그 모래사장의 이름을, 장사(長沙)라 이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친척이 부축하며 돌아오는데, 부인이 다리가 풀려 앉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 땅의 이름을 벌지지(伐知旨)라 이르게 되었다. 오랜 후에 부인이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에 올라, 왜국(倭國)을 바라보며 통곡을 하다 생을 마쳤다. 그로 인하여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되었으니, 지금도 사당이 존재한다.

 

치술령은 울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에 있는 바위는 지아비를 그리워하던 바위라고 하여 망부석이라고 부른다. 문헌의 마지막에서 언급된 사당은 인근에 위치한 은을암(隱乙岩)으로, 죽은 아내의 혼이 새가 되어 날아든 곳이라 하여 유래되었다. 망부석과 은을암은 함께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 『박제상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눌지 마립간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러 삼도(三島)로 건너가기 전에 《징심록》(부도지)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계룡산 동학사에 접해 있는 동계사에 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936년 류차달이 초혼하여 제사하고 왕명으로 동계사를 건립하였다. 이후 훼손되어 철향되었다가 1956년 중건되었다. 또한 울산 치산서원에는 박제상 부부의 위패를 모셔 충절을 기리고 있다.(3)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1993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 '스키타이 왕 단군'이란 작품을 내놓으며 "왜 단군은 이스라엘의 모세와 같은 세계적 거물이 되지 못했는가. 간단히 말하면 '삼국사기'가 '구약성서'한테 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단군에 관한 내용이 없다. 백남준이 몰랐을 수도, 일부러 틀렸을 수도 있겠으나 그건 중요치 않다. 이야기가 대세가 된 시대에 한국인은 아직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박정진 지음/마고북스/2만5000원

 

 

신라 박제상이 쓴 '부도지' 주인공
'인류의 시조' 마고 이야기 재해석

 

 

책 제목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여왕 마고'(1994)부터 떠올릴 이가 많을 듯하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마고(麻姑)는 한국사에서 단군보다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라는 책에 의하면 마고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의 여신이었다. 그녀의 두 딸이 또 자식을 낳아 몇 대가 지난 뒤 후손이 3000여명으로 불었다. 이들이 곧 인류의 시조라는 것이 부도지의 주된 내용이다.

 

 

'다시 쓰는 부도지'라는 부제에서 보듯 책은 부도지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저자는 이 작업을 "모성(母性) 중심시대를 앞두고 전개되는 기원적(紀元的) 소명"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의 구약성서가 여호와, 곧 하느님 '아버지'의 천지창조에 관한 책이라면 부도지는 그 이전의 마고, 즉 하느님 '어머니'에 의한 천지개벽을 말하는 경전이다. 현대인이 부도지에 주목해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남 하동의 지리산 청학동에 있는 마고성. 한국사에서 단군보다 먼저 등장하는 여신 마고가 살았던 곳으로 전해진다.세계일보 자료사진

 

 

책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와 마고가 상징하는 '천지개벽'을 엄격히 구분한다. 창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천지창조는 사람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제조적(製造的)' 우주관의 전형이다. 반면 천지개벽은 원래 있던 우주가 인류의 눈앞에 비로소 펼쳐졌다는 '자연적(自然的)' 우주관을 드러낸다.

 

 

"기독교 구약성서로 대표되는 제조적 우주관은 자연과학, 자본주의 경제와 더불어 한통속이 되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우주관으로 남성적·가부장적 세계관을 대표한다. 이에 비해 자연적 우주관은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자연친화적인 우주관으로 여성적·모성중심적 세계관을 대표한다."

 

 

고(故) 백남준이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스키타이 왕 단군'. 백남준은 "'삼국사기'가 '구약성서'에 지는 바람에 단군은 모세 같은 세계적 거물이 되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세계일보 자료사진

 

 

굳이 '신화'라는 말을 붙이는 점에서 드러나듯 많은 한국인은 단군을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길 주저한다. 이른바 '실증주의'의 덫에 빠진 일부 역사학자들은 단군을 역사 이전의 신화 속 주인공으로만 한정하려 한다. 하물며 단군보다 여러 세대 앞선 존재인 마고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저자는 "마고의 이야기는 비유하자면 우리 민족의 진정한 구약성서"라며 "마고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신화나 역사뿐만 아니라 철학과 과학에서도 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토록 마고에 천착하는 것은 이른바 '모성사회', '여성시대'의 표상이란 점 때문이다. 전쟁과 살육, 경쟁과 반목이 난무했던 남성적·가부장적 시대를 청산하고 사랑과 나눔, 화합과 공생의 여성적·모성중심적 시대를 열어가는 데 있어 마고는 그야말로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백남준의 탄식처럼 단군은 모세한테 졌지만, 이 땅 위에 새롭게 태동하는 모성 중심시대의 기운에 힘입어 마고는 전 세계인을 감동시킬 거물로 자리 잡길 바라 마지않는다.(4)

 

세계일보, 김태훈 기자, 천지개벽 여신 '마고'.. 이 시대에 불러낸 까닭은?, 2014. 11. 28.

 

 

 

https://youtu.be/u0RPZ62kH38

 

 

 

 

 

 

인류 역사 시원을 상상하다..서용선이 그린 마고 신화 (daum.net) 2021. 6. 4.

 

미국 작가가 한국의 창세설화에 영감을 받아 쓴 판타지 소설 (daum.net)2014. 10. 19. 

 

 

미 세도나에 선 '마고상' 제막 (daum.net)200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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