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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한국인에 의해 공개됐다. 완전한 형태로 30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홍도관에는 은왕조 마지막 帝王(제왕)인 帝辛(제신)이 주나라 무왕과의 국가 흥망이 걸린 결전을 앞두고 별점을 친 기록이 은문(=갑골문과 동일)으로 기록돼 있다. ■ 고대중국 은왕조 유물 '홍도관' 공개뉴시스 박상대기자 2008. 8. 12. 10:49 【가평=뉴시스】 고대중국 殷(은=商)왕조때 사용됐던 殷文(은문)관련 유물 중 현재까지 발견 된 것 중에서는 처음으로 밑바닥에 은대만의 고유한 점(口안에 占)자가 새겨진 '홍도관(붉은색 옹기)'이 ..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0)상나라와 한민족 中 경향신문 이기환기자 입력 : 2008.02.22 17:05은·부여는 ‘君子의 후예’ 풍류 즐기고 禮 중시 은(상) 마지막 왕 주(紂)의 악행에 대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충신의 심장을 갈랐고, 육포를 뜨고 젓을 담가 맛보게 했으며, 녹대(鹿台)를 만들어 세금으로 거둔 돈을 가득 채웠으니까. 폭군은 더 나아가 수많은 악공과 광대들을 불러놓고 주지육림의 난행을 펼쳤다.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 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사기 ‘은본기’) 안양 인쉬 거마갱(車馬坑)에서 발굴된 마차유적. 은(상)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다. -주(紂)왕을 위한 변명- 주왕의 악행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지만 “악공..

“발해만에서 동북쪽 일대가 활동 영역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하북성 노룡현(盧龍縣) 부근이 고조선의 중심지입니다. 송나라 때 태평환우기>의 기록에 여기에 ‘조선성(城)’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로는 증거가 부족한데, 사고전서>에서 노룡의 서쪽 북경 부근에 조선하(朝鮮河)가 있었다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조선에 대해 본격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고조선의 영토는 한반도 혹은 압록강 부근이 아니라, 발해만 부근을 중심으로 노룡과 북경-천진을 아우르는 지역,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오늘날의 보정시까지 이어진 하북성 일대라는 말씀이신데요. “그 일대가 우리 민족, 즉 동이족(조선족)의 활동무대였습니다. 물론 동북쪽으로는 오늘날의 조양시를 포함하는 ..

13세 단군 홀달(혹은 대음달) 재위 61년 기묘 원년(BC 1782)갑오 16년 주와 현을 나누어 정하고 직책의 한계를 정하였다. 관리는 권력을 겸하는 일 없고 정치는 법칙을 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니 백성은 고향을 떠나는 일 없 이 스스로 일하는 곳에서 편안하여, 거문고 노랫소리가 온 누리에 넘쳤다. 이 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홀달단제께서 읍차인 말량으로 하여금 구한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하니, 은나라의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은 조약을 위배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고 하였다. 이에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 ..

하남성 안양현 소둔촌에서 하천이 범람하여 갑골의 파편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되어 궁전과 거주 유적, 청동기와 도자기 등 상나라의 후기 도읍이었던 은의 유적, 즉 은허가 발굴되었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상나라의 실재를 의심했었으나 발굴된 은허가 그 의심을 풀어준 것이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상나라의 건국 갑골문, 은허의 세계로 안내하다 목차갑골의 파편으로 상나라의 수도 은의 유적을 발굴하다전설 속 상나라의 실재를 확인하다한자의 원형, 갑골문자가 발굴되다갑골 위에 점괘를 기록하다강력한 제정일치의 신권정치가 행해지다세계 최고 수준의 청동기가 발굴되다사회적 부를 빼앗긴 중인과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전쟁 포로백성 통제를 위해 야만적으로 다스리다갑골문의 저주, 갑골문 연구를 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