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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양주 회암사지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持空·1300∼1363)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어서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양주 회암사지(출처; 국가유산포털)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 1388년 위화도회군 고려 말은 원나라의 압박과 친원파의 발호, 그들과 결탁한 권문세족들의 부패로 인해 이미 붕괴가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체제 불안이 심각했고, 민란도 발생했다. 대다수가 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명분도 충분했다. 이에 공민왕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외부상황이었다. 원나라와 명나라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고, 북원의 침략과 명나라의 간섭은 고려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홍건적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이었다. 13세기 말부터 시작된 왜구들의 침입은 전 해안 지역에서 창궐했다. 국가의 안위가 심각한 수준이었으므로 최영, 이성계 같은 신흥 무인들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국론과 국력, 자원의 통일이 절실한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