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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 고고학 (10) 경주 쪽샘지구 44호분, 경주 쪽샘지구 C10호 목곽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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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 고고학 (10) 경주 쪽샘지구 44호분, 경주 쪽샘지구 C10호 목곽묘

대야발 2024. 12. 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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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쪽샘지구 44호분

 

 

 

2020년 12월 7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6세기 신라 귀족의 무덤 800여기가 모여 있다고 알려진 경북 경주시 황오동 소재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무덤 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금·은 팔찌 12점, 금·은 반지 10점, 은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 조합,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 돌절구‧공이, 바둑돌 200여점, 운모 50여점 등 유물을 일괄 발굴했다고 밝혔다.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발굴된 무덤 주인공 착장 장신구 세트 모습.(문화재청 제공)© 뉴스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장신구의 조합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다.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런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된 디자인이다.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세부.(문화재청 제공)© 뉴스1

 

 

 

장신구의 구성(조합상)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축조기의 최상층(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가 아닌 은장식 도자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추정했다.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50㎝ 전후로 추정되는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

 

금동관과 은허리띠 장식은 현재로선 정확한 문양과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추후 보존처리를 통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 등이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춰볼 때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비단벌레 금동장식과 재현품.(문화재청 제공)© 뉴스1

 

 

 

이번 유물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비단벌레 장식이 있다.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궤(부장품 상자) 상부에서 수십 점이 확인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며,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어 이번 44호 피장자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 또한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모두 마구에 사용됐기 때문에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장니(말다래)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돌절구와 공이는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 안 철솥 바로 옆에서 함께 확인됐다. 돌절구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화강암을 연마해 위쪽에 얕은 함몰부를 만들었다. 돌절구의 크기(높이 13.5㎝, 폭 11.5㎝)와 함몰부의 용량(약 60㎖)으로 보아 곡물을 빻는 실질적인 용도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됐을 수도 있고, 약제를 조제하는 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돌절구와 공이(왼쪽), 바둑돌 모습.(문화재청 제공)© 뉴스1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 사이에 대략 200여점이 모여진 상태로 확인됐다. 크기는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대 기록에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된다.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다. 또한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돼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번 피장자는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 기대된다.

 

한편 2014년부터 진행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분 발굴조사는 올해로 7년차다. 현재 매장주체부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호석 주변에서 행해진 제사흔적, 봉분 성토방식,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다양한 지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확인돼 중대형 적석목곽묘의 구조와 축조방식을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자료가 확보됐다.

(출처; https://v.daum.net/v/20201207090200749 뉴스1.2020. 12. 7.)

 

 

 

 

 

2023년 7월 4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와 과학적 연구·분석을 통해 유례가 없는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를 비롯해 무덤 피장자의 머리카락과 그 꾸밈새, 각종 금동제 장신구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직물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1500년전 신라 공주의 무덤인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장식, 금동신발 등 다양한 유물들로 10대에 숨져 묻힌 공주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1500년 전 신라 공주의 무덤으로 금동관·금동신발·금은제 장신구 등 최고급 유물이 쏟아졌던 경주시 쪽샘유적의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새로운 형식의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다리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린 판), 무덤 주인의 머리카락과 머리 꾸밈새, 당시의 각종 직물 등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들 유물은 기존에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과 함께 극히 희귀한 고대 고고학적 발굴 자료로, 신라는 물론 삼국시대의 역사와 생활문화 각 부문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의 재현품(사진 위), 비단벌레 날개로 만든 금동 장식물 실물과 재현품(아래 왼쪽), 비단벌레 날개 금동장식물 출토 장면(아래 오른쪽).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는 사상 처음 발견된 것이다. 문화재청 제공

 

 

 

 

새롭게 확인된 ‘비단벌레 꽃잎장식 직물 말다래’는 대나무살을 엮어 만든 바탕 틀(크기 80×50㎝)의 안쪽에 마직물 1장, 바깥쪽에 마직물·견직물 등 3장의 직물을 덧대고 그 위에 비단벌레 날개로 만든 나뭇잎 모양(심엽형)의 금동장식과 금동달개(영락) 등을 배치한 형태다.

 

1점의 날개 장식에 4점의 심엽형 장식이 결합돼 꽃잎 모양을 이루고, 이런 꽃잎 모양 50개가 말다래에 부착된 구조여서 당시 찬란했던 신라 공예기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려한 금록색빛의 비단벌레 날개 장식 유물은 그동안 왕릉 등 최고 지배층의 무덤에서만 발견됐다. 특히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된 말다래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돼 있는 ‘경주 천마총 말다래 천마도’(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 위에 천마도를 그려 말다래를 장식한 유물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은 “2020년 발굴조사 당시 무덤 주인의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품 상자에서 비단벌레 금동장식 수백점이 확인됐다”며 “그동안 연구·분석 결과 개별 금동장식이 아니라 말다래의 일부임을 이번에 밝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덤 주인의 머리카락도 이번에 확인됐다. 발굴단은 “발굴 당시 금동관 주변에서 폭 5㎝ 규모의 유기물 다발, 다발을 감싸고 있는 직물 흔적이 발견됐다”며 “과학적 분석 결과 유기물 다발은 머리카락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발굴단은 “신라시대 인물의 머리카락이 이런 식으로 발굴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며 “머리카락을 감싼 직물의 형태를 통해 머리카락 여러 가닥을 한데 묶은 머리모양 꾸밈새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무덤에 묻힌 신라 공주의 머리카락 뭉치와 직물들. 머리카락을 감싼 직물의 형태를 통해 공주 머리의 꾸림새가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사상 유례가 없는 직물들도 확인됐다. 금동관·금동신발·말띠꾸미개 등 각종 금동제 유물에 사용된 다양한 직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 직물은 보존되기 어려워 미륵사지 석탑·무령왕릉 등 일부에서만 나왔을 뿐 그동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귀중한 자료다.

 

무덤 내 금동관 내부에서는 마직물·견직물 등이 발견됐는데 특히 붉은색, 보라색, 노란색 3가지 색실을 사용해 무늬를 만든 최고급의 ‘삼색경금(三色經錦)’도 확인됐다. 금동신발에서는 산양털로 만든 모직물과 가죽·견직물 등이 확인됐다.

 

최장미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문헌기록에 보이던 ‘삼색경금’이 제대로 된 실물 자료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며 “과학적 분석을 통해 붉은색(홍색)과 보라색(자색)은 각각 꼭두서니와 자초를 염색한 것까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 학예관은 “실물 자료로는 최초로 확인되는 직물들이 많아 앞으로 고대 직물 연구, 관련 중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주 쪽샘 44호분’에서는 ‘삼색경금’ 등 다양한 직물들이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사진은 비단벌레 날개 금동장식과 함께 직물이 출토되는 장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나온 금동관(왼쪽)과 금동신발 일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당초 무덤 주인의 키는 150㎝로 추정됐으나 발굴단은 추가 연구에서 목관 바닥 등을 정밀조사해 130㎝ 정도로 훨씬 작은 것을 밝혀냈다. 당초 금동관은 물론 귀걸이·팔찌·허리띠 장식 등 거의 모든 유물들이 작은 데다, 여성의 상징인 작은 손칼까지 있어 무덤 주인은 10세 전후 여성으로 추정됐다.

 

여기에 금동관부터 금귀걸이, 금·은·유리로 정교하게 만든 가슴걸이, 금은 팔찌, 은허리띠 장식, 금동신발 등 대부분의 유물이 금관총·서봉총 등 왕릉급에서만 발견되는 최고급 유물이어서 공주로 여겨졌다. 무덤 내부에서는 또 4명 정도가 순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 쪽샘 44호분’에서는 모두 780여점의 유물이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 30여점은 무덤 주인인 공주가 실제 착용한 형태로 발굴돼 의미를 더한다. 신라시대 당시 각종 유물의 쓰임새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황인호 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은 “4~6세기 신라 왕족·귀족의 집단 묘역인 쪽샘유적 내의 고분인 쪽샘 44호분의 발굴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5세기 후반에 조성됐으며 무덤 주인은 10대의 신라 공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무덤 내부에서 금귀걸이(왼쪽)와 금과 은, 유리 등으로 만든 가슴걸이가 출토되는 장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공주의 무덤에서 발굴된 ‘가슴걸이’(사진 위쪽), 금귀걸이(아래 왼쪽)와 금과 은으로 만든 팔찌와 반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쪽샘 44호분’에서 출토된 돌 절구, 공이(왼쪽)와 44호분 발굴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에서 10대의 신라 왕자 무덤인 ‘금령총’에 이어 신라 공주의 무덤도 확인된 것이다. 황 소장은 “1350일이라는 기나긴 조사 과정을 통해 신라 특유의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의 봉분부터 내부까지 처음으로 전체를 완전 발굴조사함으로써 무덤의 구조와 축조 공정을 복원할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보존과학·의류직물학·토목공학·지질학 등 여러 학문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연구 성과가 밝혀져 의미가 더욱 크다”고 말했다.

 

 

2014년 발굴을 시작한 쪽샘 44호분은 그동안 조사에서 최초의 신라 행렬도를 비롯해 각종 제사 유구·유물이 무덤 밖에서 확인됐고, 무덤 안에서는 수많은 금은 장신구는 물론 바둑돌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쏟아져 큰 주목을 받아왔다.

(출처; https://v.daum.net/v/20230704093003747 경향신문. 2023. 7. 4.)

 

 

 

 

[서울=뉴시스] 경주 쪽샘지구 44호분 주인공 착장 장신구 일괄 (사진=문화재청 제공) 2023.07.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출처; https://v.daum.net/v/20230705154257235 뉴시스.2023. 7. 5.)

 

 

 

경주 쪽샘 44호분서 신라유물 200여 점 출토

https://tv.kakao.com/v/414691361

 

(출처; https://v.daum.net/v/20201207153032985 KTV. 2020. 12. 7.)

 

 

 

경주 쪽샘지구 C 10호 목곽묘

 

 

 

2019년 10월 1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출토된 5세기 전반의 말갑옷(총길이 약 290㎝×너비 약 90㎝ 가량)과 사람 갑옷의 복원을 마치고 발굴 이후 처음으로 공개했다. 발굴 당시 말갑옷은 무덤 주인공의 널방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다.

 
 
 
 
 

2009년 경주 쪽샘지구 C 10호 목곽묘에서 확인된 말갑옷이 복원을 끝내고 첫 공개됐다. 복원결과 말갑옷은 736매의 철편으로 중무장한 신라 중장기병의 것임이 드러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목·가슴 가리개 348매, 몸통 가리개 256매, 엉덩이 가리개 132매…. 2009년 경주 쪽샘지구 C10호 목곽묘의 주곽(무덤 주인공이 묻힌 널방)에서 발굴된 말갑옷은 무려 736매의 철편으로 중무장한 신라 중장기병이 탄 말이 장착한 무구였음이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말갑옷을 복원해서 실제로 말에 착용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말갑옷의 목·가슴가리개 한쪽에는 사람 갑옷 중 투구와 목가리개가 놓여있었다. 또 말 갑옷의 몸통 가리개 위에는 사람 갑옷 중 대퇴부(허벅지) 부분이 포개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토기들이 부장돼 있었다. 피장자의 널방 옆에 달린 부곽에서는 말머리 가리개(마주·馬胄)와 안장, 재갈 등이 출토됐다.

 

이렇게 말갑옷 뿐 아니라 무덤 피장자로 추정되는 장수의 갑옷이 함께 확인된 것은 획기적인 발굴성과라 할 수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삼국시대 개마무사(鎧馬武士·철갑옷으로 무장한 말을 탄 무사)의 실체를 보여준 고고학 자료였기 때문이다.

 

 

 

2009년 쪽샘지구 C10호 목곽묘에서 노출되고 있는 말갑옷. 삼국시대 개마무사(鎧馬武士·철갑옷으로 무장한 말을 탄 무사)의 실체를 보여준 고고학 자료였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복원작업을 통해 이날 공개한 갑옷은 말갑옷(36㎏)과 사람 갑옷(투구·목가리개·허벅지 부분) 등이다. 말갑옷의 목·가슴가리개 철편은 길이 6.8~7.2㎝, 너비 5~6.2㎝, 두께 약 0.2㎝이고, 몸통가리개 철편은 길이 12.2㎝, 너비 7.6㎝, 두께 0.2㎝이며, 엉덩이가리개 철편은 길이 8.3~10.2㎝, 너비 4.6~6.5㎝, 두께 약 0.2㎝ 정도로 측정됐다.

 

목·가슴가리개는 1~17단으로 구성됐는데 목가리개는 1~11단, 가슴가리개는 12~17단이었다. 몸통가리개 철편은 좌·우 각 6단으로 구성됐고, 엉덩이가리개 철편은 꼬리 윗부분과 아랫부분 각각 8단으로 제작됐다. 철편은 띠장식을 이용해서 말 갈기에서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몸통가리개 철편은 별도의 연결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말의 등 뒤에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 장인들은 말의 굴곡을 최대한 맞추려고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서 철편을 제작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엉덩이가리개 철편 윗부분은 말 안장의 후륜(안장 뒤쪽에 세운 등받이)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밑부분은 별도의 연결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몸통가리개 양끝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명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철편은 말의 굴곡을 최대한 맞추려고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서 제작한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국내에서 이처럼 삼국시대 개마무사의 무장 상태를 완벽하게 갖춘 세트가 보고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출처; 736장의 철편이 겹겹…신라 중무장병의 말갑옷 위용 복원후 첫공개 - 경향신문 (khan.co.kr)2019.10.16)

 
 
 
 
 

2024년 3월 28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ⅩⅤ-C10호 목곽묘 출토 찰갑 조사연구 보고서’(전 2권)와 함께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ⅩⅣ-41호 적석목곽묘 발굴조사 보고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ⅩⅥ-K6·8·16·252·253호 공동발굴조사 보고서’를 각각 발간했다.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ⅩⅤ-C10호 목곽묘 출토 찰갑 조사연구 보고서’는 지난 2009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찰갑의 조사·연구, 보존처리 성과를 집대성했다. 발굴 당시 C10호 목곽묘(널무덤)에서는 국내 최초로 온전한 형태의 찰갑과 마갑이 각각 한 벌씩 출토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국내 처음으로 신라시대의 갑옷 한 벌을 조사연구하고 백제·가야·고구려 관련 유물 분석도 수록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 ⅩⅤ-C10호 목곽묘 출토 찰갑 조사연구 보고서’를 펴냈다. 사진은 C10호 고분에서 갑옷이 발견된 당시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1500여년 전 신라시대 철갑기병인 개마무사는 3800장의 소찰(미늘·비늘 모양의 작은 쇳조각)을 엮은 찰갑(갑옷)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갑옷으로 보호한 뒤, 쇠로 만든 투구를 쓰고 손에 무기를 들어 중무장한 것이다.

 

개마무사가 타는 말도 740장의 소찰로 몸통 전체를 덮은 말 갑옷(마갑)을 입히고 말 투구(마주)를 씌웠다. 개마무사가 입은 찰갑의 무게는 약 33㎏, 마갑은 약 36㎏로 추정된다. 찰갑을 이루는 각 소찰들은 가죽끈으로 서로 상하좌우를 엮은 것으로 조사됐다. 개마무사의 전체 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중무장기병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8일 경주 쪽샘지구 고분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3종을 발간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어깨 부위 갑옷의 소찰들(위)과 종아리 부위 갑옷 유물들의 실물과 도면, 엑스레이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동안 찰갑·마갑의 일부는 많이 출토됐지만 완전한 형태가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신라는 물론 삼국시대 갑옷·마갑 연구에 획기적인 유물로 학계와 대중적 주목을 받았다. 2013년에는 일부를 재현한 기병·말의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2013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일부 출토 유물을 바탕으로 재현한 갑옷 모습(위)과 말 갑옷.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C10호 출토 찰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갑옷과 투구는 일정한 크기의 소찰을 엮어 만들었다. 출토된 소찰은 3771장이지만 신라시대 제작 당시엔 모두 3800여 장이 사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찰갑은 머리부터 목을 보호하는 경갑을 비롯해 몸통, 어깨, 팔, 다리 등 부위별로 구성됐다. 각 부위 마다 소찰들의 모양이나 길이·너비 등 크기는 다양하지만 그 두께는 0.1㎝ 안팎인 것으로 드러났다.

 

갑옷 제작은 가죽끈을 이용해 각 소찰들을 하나씩 좌우상하로 서로 연결했다. 각 소찰에는 연결을 위한 작은 구멍들이 곳곳에 뚫려 있으며, 일부 유물에는 가죽끈으로 추정되는 물질과 가죽끈으로 엮은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특히 소찰들은 같은 모양과 크기, 동일한 자리에 구멍이 있는 경우가 있어 당시 대량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 소찰 내부의 미세조직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인위적 처리 과정을 알아낸다면 대량생산을 검증할 수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위별 갑옷의 형태는 쌍영총, 삼실총, 안악3호분, 통구 12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중무장기병과 유사할 것으로 추정됐다. 어깨에서 팔뚝까지의 부위나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부위 등이 대표적이다.

 

 

 

고구려 벽화고분인 쌍영총 내부에 그려진 고구려 철갑기병의 갑옷 일부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다만 고구려 벽화에는 허벅지 부위와 종아리 부위가 하나로 연결된 모습이지만 신라 찰갑은 연결 흔적이 없어 따로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주문화재연구소 최장미 학예관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는 형태와 유사한 형태일 것으로 생각된다”며 “하지만 무리한 복원 시도는 오류를 낳을 수있어 앞으로 심화 연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는 C10호 출토 찰갑 만이 아니라 삼국시대 사람과 말의 갑옷·투구 전반에 관한 내용도 실렸다. 그동안 가장 많은 갑옷·투구 유물이 나온 가야 권역은 물론 백제, 고구려의 관련 유물 현황을 바탕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분석 글까지 수록한 것이다. 삼국시대 다른 유물들에 비해 그 연구성과가 적은 편인 갑옷·투구 관련 유물의 상호비교와 연구·활용의 귀중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황인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보고서는 발굴 이후 14년간 진행된 연구성과를 모았다”며 “국내 최초로 찰갑을 각 부위별로 정리하고 각 소찰의 도면과 사진, 중요 엑스레이 등 찰갑 한 벌 전량에 대한 관련 정보를 모두 수록했다”고 밝혔다. 황 소장은 “이번 연구성과는 향후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대 갑옷 관련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며 “향후 찰갑 연구를 더 심화해 구조와 특징 등 그 전모를 명확히 밝히고 복원·재현해 공개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라시대 왕족, 귀족들의 무덤 유적지인 경주 쪽샘지구의 C10호 고분에서는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중무장 기병이 입은 찰갑과 말에게 입힌 마갑 각 한 벌씩이 출토됐다. 사진은 찰갑 일부가 발견된 모습(위)과 찰갑과 기타 유물들이 있는 C10호 내부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C10호 고분이 자리한 경주 쪽샘지구는 4~6세기에 조성된 왕족·귀족들 무덤 1000여기가 있는 신라시대 무덤군 유적이다. 다양한 무덤 양식이 있어 신라 고분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출처; 신라시대 철갑기병, 3800장 미늘 엮은 갑옷·투구로 중무장 (daum.net) 도재기 기자2024. 3. 28. )

 

 

 

 

 

 

 

 

<참고자료>

 

 

 

 

 

https://v.daum.net/v/20230622112759047 연합뉴스. 2023. 6. 22.

 

 

https://v.daum.net/v/20230601164734932

 

 

 

https://v.daum.net/v/20240328101016642

 

 

 

비단벌레 말다래·머리카락 출토…쪽샘 44호분 주인은 어린 신라 공주였다 (daum.net)  2023. 7. 6.

 

 

https://v.daum.net/v/20240626090034735

 

 

https://v.daum.net/v/20240626181635307

 

 

 

 

<신라 기마무사 복원과정과 그 특징> | 연합뉴스 (yna.co.kr) 2013-04-24 

 

 


이것이 신라 기마무사의 갑옷 - 매일경제 (mk.co.kr) 2013-04-24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발굴현장 공개 | 연합뉴스 (yna.co.kr)2014-03-25

 

 

 

'무게 28t' 신라 말갑옷 덩이는 어떻게 통째로 보존됐나(종합) | 연합뉴스 (yna.co.kr)2020-04-07 

 

 

 

삼국시대 최전방 강릉에서 신라 장수가 입었던 갑옷이 출토됐다 - 경향신문 (khan.co.kr)2018.11.01이기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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