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4. 백제 문화유산 (3) 세계문화유산 : 백제역사유적지구 - 부여 왕릉원 본문
[부여=뉴시스] 충남 부여왕릉원. (사진= 부여군 제공) 2024.11.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출처; https://v.daum.net/v/20241101093349569)
중앙과 동·서로 나뉜 부여 왕릉원에는 적어도 20여기의 왕과 왕족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고분을 포함한 동·서고분군은 왕은 아니고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답니다.
이미 복원 정비된 중앙고분군 7기의 무덤이 사비백제 시대의 왕릉으로 보인답니다.
사비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이 모인 백제왕릉원(능산리고분군)의 동고분군에서 새로운 왕릉급 고분이 확인됐다. 백제왕릉원 구역에는 20여기의 왕릉급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데, 이번에 확인된 고분은 왕족이 무덤을 추정된다.|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 사업추진단 제공
■성왕, 위덕왕의 무덤은 어디?
며칠전 사비백제 왕과 왕족의 무덤인 부여 왕릉원(능산리고분군)의 동고분군에서 새로운 고분이 확인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로써 동고분군에서 확인된 무덤은 6기로 늘었는데요.
중앙과 동·서로 나뉜 부여 왕릉원에는 적어도 20여기의 왕과 왕족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고분을 포함한 동·서고분군은 왕은 아니고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답니다.
이미 복원 정비된 중앙고분군 7기의 무덤이 사비백제 시대의 왕릉으로 보인답니다.
사비 천도(538년) 이후 백제를 다스린 임금은 여섯분입니다.
성왕과 위덕왕, 혜왕, 법왕과 무왕(600~641), 의자왕(641~660) 등이 있죠.
그러나 익산 쌍릉에 부부묘를 조성한 무왕과, 백제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간 의자왕 등 두 분을 빼면 네 분의 임금이 7기 중 4기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무덤 주인공을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중 중하총을 성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제법 있습니다. 무령왕릉의 무덤 형식인 아치형을 따르고 있는 점이 심상치 않다는 건데요. 그래서 무령왕(501~523)의 아들인 성왕이 주인공으로 꼽히는 겁니다.
부여 백제 왕릉원 가운데 중앙고분군에 사비백제 시대 임금인 성왕(523~554), 위덕왕(554~598), 혜왕(598~599), 법왕(599~600) 등 4명의 임금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무령왕릉의 무덤양식인 아치형을 따르는 중하층이 성왕릉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되고 있다. 위덕왕의 무덤은 동하총 혹은 동상총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치 않다.
왕흥사를 조성한 창왕, 즉 위덕왕은 ‘동하총’이나 ‘동삼총’으로 추정된답니다.
위덕왕과 비슷한 시기에 죽은 혜왕(598~599)과 법왕(599~600)은 ‘서하총’, ‘서상총’, ‘중상총’ 등에 묻혔을 것이구요.
물론 모든 것은 추정일 뿐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삼국사기>가 묘사한 7세기 전반의 왕흥사는 대단했습니다.
“절은 (백마)강가에 있는데, 채색과 장식이 장엄하고 화려했다. 왕(무왕)이 매번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 행향(行香·향로를 들고 불교법회가 열리는 주위를 도는 불교의식)을 펼쳤다”고 했습니다. 무왕 역시 성왕, 위덕왕처럼 불교의 힘을 빌려 나라의 중흥을 빌며 백마강을 건너지 않았을까요. 백마강 하면 우리는 낙화암과 함께 삼천궁녀를 떠올리죠.
그러나 백제의 찬란한 678년 역사를 삼천궁녀의 안타까운 설화로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어쩐지 서글픈 것 같습니다.(이 기사를 위해 도의철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 학예연구사와 이성준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 이한상 대전대 교수 등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경향신문. 이기환 역사스토리텔러 기자. 2022. 5. 16. (1)
문화재청은 2022년 5월 3일 “부여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 발굴조사’에서 백제 고분의 축조 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고분 2기가 확인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5-1번지 일대에서 4일 오후 2시 발굴현장을 공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백제 고분이 추가로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새로 발견된 고분이 축조 당시 모습이 잘 남아 있어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여 왕릉원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1917년, 1938년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구역인 동고분군에서도 5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새로운 고분 1기(6호분)를 추가로 발견했고, 일제강점기에 확인됐던 고분 1기(1호분)의 실체도 재확인했다.
부여 왕릉원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조사된 고분은 원형의 봉분과 지하에 매장주체부를 둔 굴식돌방무덤(무덤 옆으로 통로를 내어 돌방으로 내부를 만든 구조)으로, 봉분은 지름 20m 정도이고 외부에는 경계석렬이 있다. 고분 외곽의 사면부 하단에는 2단의 축대도 설치해 묘역이 조성됐다. 돌방무덤 앞의 무덤길은 두 차례에 걸쳐 조성돼 추가 매장의 흔적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발견된 6호분은 고분 축조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백제 사비기 왕릉급 고분의 조성과정과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기대감이 크다. 특히 봉분 내 추가 매장 흔적은 부여 왕릉원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왕릉급 고분의 매장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 6호분 발굴조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에 조사됐던 1호분은 이번에 재조사를 통해 구분의 위치와 규모가 명확히 확인됐다. 조사 과정에서 고분 조성 전에 땅을 반반하게 고른 후 쌓아올린 봉분과 돌방무덤 앞에 매장을 위해 길게 조성된 무덤길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과 부여군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부여 왕릉원 동고분군의 정비와 관리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백제 사비기 장례문화의 실체를 파악할 예정이다.
서울신문. 류재민 기자. 2022. 5. 3. (2)
문화재청은 사적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 변경을 예고했다고 2021년 7월 14일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사적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부여 왕릉원'으로 명칭 변경을 예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서울=뉴시스] 부여 능산리 고분군 항공사진.(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7.15 photo@newsis.com
1963년 1월 사적으로 지정된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무덤들 서쪽에서 발굴된 절터에서 1996년 5월 국보로 지정된 ‘백제 금동대향로’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이 출토되어 능산리 무덤들이 왕실 무덤임이 확인됐다.
이번 '부여 왕릉원'으로의 명칭 변경은 피장자들이 왕과 왕족으로서 왕릉급 고분군임을 분명히 알려 인근의 '능안골 고분군', '염창리 고분군'들과 차별성을 두고 능산리 고분군만의 특성과 역사성을 반영하고자한 취지다.
뉴시스. 이수지기자. 2021. 7. 15. (3)
2015년 백제역사유적 지구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와 30년대 일본 학자들의 발굴 조사 뒤로는 거의 조사 되지 않았던 능산리 고분군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 고분군에 대해 약 6년간의 지하 물리탐사를 벌인 끝에 최근 백제 사비시대 당시 왕릉의 배치와 규모가 지금 복원된 모습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본 능산리 고분군. 아래쪽으로 돌출된 숲 한가운데 누런 땅 드러난 부분이 서고분군의 8, 10호분 발굴지점이다. 숲 오른쪽의 잔디밭 봉분들이 사적 지정된 기존 능산리 고분군이다. 숲 왼쪽의 허옇고 큰 건물터는 1993년 금동대향로가 나온 능사 터다. 사진 한국전통문화대 고고학연구소 제공
능산리 중앙고분군 지하 물리탐사 결과 작성된 지하 유구 분포 도해도. 주요 무덤들을 둘러싼 점선은 물리탐사로 드러난 호석 추정 열을 따라 그린 선으로 백제 왕릉의 봉분이 현재 복원정비 되어있는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됐으며,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두 기씩 서로 연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제 왕조는 5세기 고구려에 패해 첫 도읍지 한성(서울)에서 밀려난 뒤 6~7세기 웅진(충남 공주)과 사비(충남 부여)로 도읍을 옮겨 다시 일어서게 된다. 백제의 이 중흥기 시절 왕조를 대표하는 왕들의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
많은 이들이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수 많은 보물을 쏟아내 세상을 놀라게 한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고고역사학계 전문가들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또 다른 왕릉급 고분군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 부여(사비)의 동쪽 산기슭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국가사적)이 바로 그곳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릉급 무덤 떼다.
학계에서는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등 백제 후기 왕가의 여러 제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큰 묘역 터로 간주해왔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 지구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와 30년대 일본 학자들의 발굴 조사 뒤로는 거의 조사 되지 않았던 능산리 고분군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 고분군에 대해 약 6년간의 지하 물리탐사를 벌인 끝에 최근 백제 사비시대 당시 왕릉의 배치와 규모가 지금 복원된 모습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소는 2014~2019년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레이더 전파를 고분군 땅 밑으로 쏘아 지하의 매장물을 파악하는 지하 물리탐사 작업을 벌였다. 결과를 보니, 각 봉분 외곽에는 호석(護石)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으며, 이를 분석한 결과 사비기 능산리 왕릉의 봉분 규모가 현재 복원·정비된 지름 20m보다 훨씬 큰 25~30m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이런 내용이 담긴 종합적인 물리탐사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호석이란 무덤 봉분 외곽에 둥글게 열을 지어 두르는 고분의 경계를 표시하는 돌을 말한다. 능산리 고분군에서는 이 호석이 일본학자들의 발굴 조사 사진에서 일부 나타난 것 외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물리탐사를 통해 중앙 고분군 7기의 모두에서 완형 또는 부분적인 원호가 나타난 것이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대지에 대한 2014~2019년 지하 물리탐사 작업의 범위를 전체 사진에 합성한 도해도. 지하에 있는 이상체 반응을 탐색한 물리탐사 작업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공동 진행했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물리탐사 작업 광경. 지난해 찍은 사진이다.
이를 통해 중앙 고분군을 이루는 주요 무덤인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는 배치 얼개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장한길로 학예사는 “탐측 결과 호석 추정 열이 붙은 고분이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 간에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과 왕비 무덤이 함께 조성됐거나 가족 단위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육안으로는 각각의 고분이 제각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무덤끼리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연구소 쪽은 무덤 사이 빈 곳 여기저기서 이상체가 감지된 만큼 그 동안 몰랐던 새로운 무덤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조사는 백제 후기 능원 종합 학술연구 사업의 핵심인 능산리 고분군 중장기 학술조사의 첫 단계인데,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정보가 나와 학계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공중에서 본 부여 능산리 고분군 전경. 중간에 일곱개의 무덤 자리가 보이는 곳이 능산리 중앙고분군이며, 왼쪽 상단에 숲으로 둘러싸인 네모진 구역이 지난 2016년 4기의 무덤이 발굴된 서고분군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조선 영조 때인 1757년 나온 공주의 옛 읍지인 <여지도서> 등에 언급돼 있다. 부여현 관아 동쪽에 ‘능산’이 있다는 기록이 나와 조선시대 선조들은 이미 백제의 왕릉급 무덤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능의 내부 실체가 처음 드러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세 차례의 발굴조사였다.
1915년 구로이타 가쓰미와 세키노 다다시,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가 중앙고분군과 서고분군을, 1937년 우메하라 스에지가 동고분군을 발굴했다.
정식 보고서 없이 1916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와 1920년 나온 <대정6년도고적조사보고>에 간단한 설명과 내외부를 찍은 유리건판 사진 몇 장만 남겼을 뿐이지만, 중앙 고분군의 고분 6기와 동서 고분군의 9기 등 고분 15기가 당시 확인됐다.
이후 60년대 봉분을 정비하면서 고분 2기가 다시 드러났고, 2016년 한국전통문화대 조사팀의 서고분군 발굴로 3기의 고분이 추가 확인돼 현재까지 20기가 파악된 상태다.
특히 2007년까지 무덤 내부가 개방됐던 중앙 고분군의 동하총은 고구려 강서무덤처럼 사신도 벽화가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무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덤 얼개는 백제 후기의 전형적인 굴식 돌방무덤이지만, 세부 양식에선 웅진 시기 벽돌 무덤의 아치식 천장이 정제된 판석과 꺾임 천장을 쓰는 석실분으로 변모돼 가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백제 능원 제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주목됐다.
고분군 서쪽 능산리 절터(능사)에서는 1992년 백제 미술품 가운데 최고 걸작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와 석조사리감(국보 288호)이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오는 9월부터 일제강점기 발굴 이래 100여년 만에 능산리 중앙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재발굴 조사에 들어간다.
잠정적인 계획안에 따르면, 2038년까지 진행되는 대규모 중장기 조사다. 올해 하반기 첫 조사는 시굴 성격으로 이번 물리탐사에서 확인된 무덤 부근 지하 호석을 확인하고, 내부를 흙으로 메운 동하총의 관대 등을 해체·분석할 계획이다.
김대영 학예연구사는 “발굴을 통해 능산리 중앙고분군 무덤의 실제 토층 연대를 확인하고 분류하게 되면 무덤의 선후 관계와 무덤 주인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 2020.07.15. (4)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20516060105871 경향신문.2022. 5. 16.
(2) https://v.daum.net/v/20220503161603336 서울신문. 2022. 5. 3.
(3) https://v.daum.net/v/20210715093803768 뉴시스. 2021. 7. 15.
(4) 부여 백제 왕릉 레이더 쏘아 탐사해보니..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다 (daum.net) 2020. 7. 15.
<참고자료>
부여 왕릉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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