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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대일항쟁기) (13) 1911년 ~1914년 권업회 →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 → 1917년 전로한족중앙회 → 1919년 대한국민의회 본문

코리아시대/대한민국임시정부(대일항쟁기)

대한민국임시정부(대일항쟁기) (13) 1911년 ~1914년 권업회 → 1914년 대한광복군정부 → 1917년 전로한족중앙회 → 1919년 대한국민의회

대야발 2025. 5. 5. 17:24

 

 

 

 

 

 

 

 

한민족 독립운동사 논의와 연구에서 상하이(上海)·하와이·북미주가 중심무대로 정설화돼 있지만 사실 그 발원지와 핵심 활동 지역은 러시아 연해주였다. 특히 1910년을 전후해 무장독립운동의 활동 기지는 이곳이었다.

 

이 지역은 20세기 초반 20만명이 넘는 재외 한민족의 최대 거주 지역이자 민족사회가 형성된 곳이었다. 만주 군벌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 당국이 한국 독립운동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 연해주는 무장독립투쟁의 기지

아시아투데이 최영재 기자 2014. 08. 13. 07:11

 

 

안중근 장군, 연해주 '동의회' 소속으로 단원 12명과 왼손 무명지 끊고 결의
 
 
 
블라디보스토크시 전경,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극동의 군사기지며 연해주 지방의 행정중심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사진=최영재

 

 

 

한민족 독립운동사 논의와 연구에서 상하이(上海)·하와이·북미주가 중심무대로 정설화돼 있지만 사실 그 발원지와 핵심 활동 지역은 러시아 연해주였다. 특히 1910년을 전후해 무장독립운동의 활동 기지는 이곳이었다.

 

이 지역은 20세기 초반 20만명이 넘는 재외 한민족의 최대 거주 지역이자 민족사회가 형성된 곳이었다. 만주 군벌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 당국이 한국 독립운동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들이 모여들었다.

 

 
 
 

◇연추의 항일 결사, 동의회

특히 1908년 4월 최재형·이범윤·이위종 등은 연추(현재의 크라스키노)에서 의병 단체인 ‘동의회’를 결성했다. 연추는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던 의병들의 근거지였다.

1909년, 동의회 소속인 안중근 장군은 단원 12명과 함께 비밀결사체 ‘동의 단지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독립의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 연추의 카리에 모여 왼손 무명지를 끊었다. 이들이 남긴 ‘대한독립(大韓獨立)’ 네 글자의 혈서가 오늘날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성명회와 13도 의군

1910년 의병부대인 13도 의군이 조직됐다. 이들의 목표는 국경을 넘어 국내로 진공해 일제를 몰아내는 것이었다. 13도 의군은 산하에 창의군과 장의군 등 2개 부대를 뒀다. 창의군 총재는 이범윤이 맡고, 장의군 총재는 이남기가 맡았다. 이 부대들은 도총재 유인석의 직접 지휘로 전투 훈련에 매진했다.

13도 의군의 유인석·이범윤·이상설 등은 ‘합병조약’ 무효선언을 위해 성명회를 조직했다. 선언서에는 8624명의 서명을 첨부해 독립의지를 선포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솔빈 강변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의사 기념비. 11일 오전 국제한민족재단과 아시아투데이의 유라시아 시베리아 횡단 대장정 기행단이 이곳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사진=최영재

 

 
 

◇권업회

1911년 5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 본부를 둔 ‘권업회’가 창설됐다. 초대 회장은 최재형, 부회장은 홍범도였다. 권업회의 목표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군을 양성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권업회는 북만주에 ‘대전학교’라는 사관학교를 세우고 1914년에는 마침내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한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삼아 설립된 망명정부였다. 대한광복군정부는 권업회의 이상설·이동휘·이종호·정재관 등을 주축으로 흩어져 있는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모아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한 것이었다.

 


대한광복군 정부의 초대 대통령에는 이상설, 부통령에는 이동휘가 선출됐다. 그러나 권업회는 제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제와 제휴한 러시아의 탄압을 받아 해체되고 말았다.

 
 

◇대한국민의회의 성립과 활동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월 17일 항일독립대회를 갖고 이어 3월 21일 최초로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를 수립했다. 블라디보스토크·니콜스크·우수리스크 등 연해주 일대는 독립운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다.

연해주에 근거를 둔 독립군단들은 1920년 10월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 지역에서 무장독립운동 사상 전무후무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연해주 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은 경신참변(1920년)과 자유시참변(1921년)으로 수 많은 한인과 독립군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연해주 지역의 무장독립투쟁은 거의 괴멸되고 말았다.(1)

 
 
 

 

 

 '12월 독립운동가'에 권업회 주도한 이종호·김학만·최봉준 선생

이데일리 김미경기자 2021. 11. 30. 10:47

 

보훈처·광복회·독립기념관 공동 선정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이종호·김학만·최봉준 선생을 ‘올해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단체인 권업회(勸業會)를 결성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항일 운동을 펼친 인물들이다. 권업회는 일제 탄압을 피하기 위해 ‘한인에게 실업을 장려한다’는 뜻의 경제단체로 창립됐으나, 실제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을 결집해 ‘조국독립’을 최고의 이념으로 한 항일구국단체다.

 

 

이종호 선생(사진=보훈처).
 
 
 

 

보훈처에 따르면 기관지 ‘권업신문’은 권업회 지회와 분사무소를 통해 연해주 한인마을까지 보급돼 거주 동포의 애국정신과 민족의식 고취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업회의 창립과 권업신문 발간에 공헌한 이종호 선생은 고종의 측근인 이용익의 손자다. 이 선생은 1906년 10월 서울에서 애국계몽단체인 한북흥학회를 조직했고, 서북학회의 서북협성학교 설립 초기 재정을 전담했으며, 교장을 맡아 항일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일제감시망에 포착돼 위험인물로 분류됐다.

 

1909년 10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 일어나자 배후 인물로 지목, 원산에서 체포돼 3개월 넘게 수감조사를 받고 석방됐으며, 이후 권업회의 조직과 ‘권업신문’ 발간에 가장 중요한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했다.

 

 

최봉준 선생(사진=보훈처).
 
 
 
 

권업회 초대 총재로 기반을 다진 김학만 선생은 초기 연해주 한인사회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다. 학교설립에 노력했던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에 최초의 한인학교인 ‘계동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맡았다.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 이상설 등과 성명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권업회 창립과 ‘권업신문’ 발간을 후원한 최봉준 선생은 부모를 따라 8세에 한인 최초 이주지인 연해주 일대의 지신허에 정착했고, 이후 두만강변 근처 촌락을 개척하고 마을 대표로 추대됐다. 선생은 함경도 일대의 소를 러시아 군대에 수출하는 무역으로 자본가로 성장해 많은 재산을 모아 조국독립에 재정적 후원을 했다.

 

 

1908년 러시아 한인사회에 간행된 최초 신문인 ‘해조신문’과 ‘권업신문’ 창간의 재정적 지원은 물론 ‘계동학교’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지원을 하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연해주 한인 자치기관인 고려중앙총회를 조직하고, 기관지인 ‘청구신보’를 창간하는데도 힘을 보탰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종호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학만 선생에게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그리고 최봉준 선생에게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1)

 

 

 

 

■ "이상설 정도령의 대한광복군정부 조직 시기는 1913년 말"

뉴시스 강신욱 기자 2023. 10. 12. 16:16

 

 

진천 학술회서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 지적

 
[진천=뉴시스] 강신욱 기자 = 12일 오후 충북 생거진천종합사회복지관 소극장에서 열린 보재이상설기념관 건립기념 학술회에서 이명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진천군 제공) 2023.10.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보재(簿齋 이상설(李相卨·1870~1917) 선생이 정도령을 맡았던 대한광복군정부의 조직 시기는 1914년이 아닌 1913년이란 주장이 나왔다.

 

진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진천향토사연구회가 주관한 ‘2023년 보재이상설기념관 건립기념 학술회’가 12일 생거진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191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이상설의 민족운동-대한광복군정부를 중심으로'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반 명예교수는 "이상설은 대한광복군정부 초대 정도령(正都領)으로 있다가 사퇴하고 이동휘가 2대 정도령이 됐다"며 대한광복군정부 책임비서를 지낸 계봉우(桂奉瑀·1880~1959)의 기록을 들어 "대한광복군정부 최고지도자를 정통령(正統領)으로 표기하는 건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알려진 대한광복군정부 조직 시기도 수정했다.

계봉우가 1936년 작성한 자필이력서에서 "1913년에 중령과 원동에 있는 조선인 민족혁명자로 조직한 대한광복군정부의 책임비서가 됐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학계는 대한광복군정부가 191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설립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자 군정부(軍政府) 또는 망명정부로 설명한다.

 

 

반 명예교수는 이상설 선생이 1913년 10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권업회 특별총회에서 '권업신문' 사장 겸 주필에 선출됐다가 논설 두 장을 쓰고 사임했고, 대한광복군정부 수석인 정도령에 피선됐지만 이 역시 바로 물러나고 12월 초 하바롭스크로 떠났다고 분석했다. 이상설 선생은 이때 대한광복군정부와 관계를 단절했다는 게 반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들 기록을 종합할 때 대한광복군정부 조직 시기는 러시아 한인사회에서 대동단결 분위기가 고조됐던 권업회 특별총회 직후인 1913년 10월 말 또는 11월 초로 추정했다.

 

이날 학술회는 한상도 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리더로서 이상설 선생의 면모' 기조발제를 비롯해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이상설의 구미 외교 활동과 의의', 정제우 전 진천향토사연구회장의 '보재 이상설의 국권회복 독립운동', 황경수 청주대 교수의 '보재 이상설 기념관 운영의 효율화 방안'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종합토론은 김양식 청주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장, 채영국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김경열 충북대 국어교육과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학술회에는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인 이현원씨와 친족인 이문원 수당기념관장도 참석했다.

 

보재 이상설 선생은 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이위종 열사와 함께 국권회복을 국제여론에 호소했다. 1910년 국권피탈 이후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앞장서다가 향년 48세를 일기로 니콜리스크 우스리스크에서 순국했다.

 

한편 이상설기념관은 82억1500만원을 들여 선생의 고향인 진천읍 신척리 135 일대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전시관, 다목적관(교육관·강당·전시실) 등이 조성되고 있다. 내년에 개관한다.(3)

 

 

 

■ 러시아 3.1운동 이끈 지도자…독립운동가 문창범을 돌아보다

연합뉴스 김예나기자 2024. 7. 10. 15:54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이 쓴 '문창범 평전'

 
일제 주요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기록된 문창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대사료 데이터베이스(DB)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19년 3월 17일 러시아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외침이 울렸다.

대한국민의회 명의의 '독립선언서'가 발표됐고 곳곳에서 만세 운동이 펼쳐졌다.

 

일본 헌병대와 러시아 군대가 출동해 시위 행렬을 해산시켰으나, 독립을 향한 열망은 막지 못했다. 그 중심에는 독립운동가 문창범이 있었다.

 

러시아 지역에서 3·1운동을 이끈 문창범 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평전이 나왔다.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한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이 쓴 '문창범 평전'(선인)은 러시아 한인들이 '대통령'으로 부른 지도자, 문창범 선생의 삶과 주요 활동을 정리한 책이다.

 

 

대한독립선언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창범 선생은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을 이끈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인 그는 1877년 러시아로 이주한 뒤 러시아 군납업자로 일하며 재산을 모아 연해주 한인 학교 설립과 '해조신문' 등 한글 신문 발간을 지원했다.

 

그는 1919년 2월 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 39명 명의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에 만주·러시아지역 한인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임시정부의 성격을 띤 최초의 조직인 대한국민의회 의장으로 선출돼 러시아 지역 항일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최후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박 이사장은 "러시아에서도 조국 조선을 잊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오늘날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모두가 잊어버린 인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 문창범 선생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은 '원호인'(元戶人·귀화 한인)으로 불린 그가 계몽 운동에 뛰어들고 격동의 시기에 3·1운동을 이끌기까지의 일대기를 시기별로 나눠 살펴본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중심으로 한 권업회(勸業會), 러시아 혁명 이후의 대한국민의회 조직,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총장 추대 등 주요 활동도 짚는다.

 

 

책 표지 이미지 [선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박 이사장은 "오늘날 고려인으로 불리는 동포들의 역사를 분석함으로써 고려인의 특징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또 다른 조국,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경계인들의 항일투쟁이 보다 밝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4)

 

 

 

 

<자료출처>

 

 

(1) 연해주는 무장독립투쟁의 기지 - 아시아투데이 (asiatoday.co.kr)2014. 08. 13.

 

 

 

(4) 러시아 3.1운동 이끈 지도자…독립운동가 문창범을 돌아보다 (daum.net)

 

 

<참고자료>

 

 

권업회 - Daum 백과

 

 

권업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대한국민의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발해의 옛터, 항일무장독립운동의 기지 연해주 - 아시아투데이 (asiatoday.co.kr)2014.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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