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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1949년에 길림성 육정산에서 발해국의 제3대 王인 문왕(文王)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묘,1980년에 黑龍江省 화룡현에서 발해국의 제4대 王인 문왕(文王)의 넷째 딸 정효공주의 묘,1991년에 흑룡강성 녕안현에서 발해 왕릉,2004~2005년 길림성(지린성吉林省) 화룡시(허룽시和龍市) 용해촌(룽하이촌龍海村) 용두산(룽터우산龍頭山) 고분군에서 발해 3대 문왕(文王)의 부인 효의황후(孝懿皇后)의 묘지(墓誌)와 9대 간왕(簡王)의 부인 순목황후(順穆皇后)의 묘지가 발굴됐습니다. 정혜공주 무덤에서는 묘비 이외에 석사자등이 발견되었고, 정효공주 무덤에서는 발해 시기 생활모습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12폭 벽화 등이 발견되었습니다.두 공주의 묘지명에서는 아버지 제3대 문왕이 57년간 재위하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며 대조영이 세운 발해(渤海.698~926)는 2백28년간 모두 네차례나 수도를 옮겼다. 그것도 건국한 지 1백년도 안된 기간에 이뤄졌다. 모란강 상류 동모산 지역(현 지린성 둔화현)에 도읍을 정한 발해는 740년께 서고성(지린성 허룽현)으로 첫 천도를 한다. 그리고 다시 755년 상경성(헤이룽장성 영안현)으로 옮겼고, 또 785년엔 두만강 부근의 팔련성(훈춘)으로 이전했으며, 793년에 다시 상경성으로 되돌아가 멸망할 때까지 도읍으로 삼았다. 755년 상경성으로의 두번째 천도는 당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난을 일으킨 안록산의 침략 가능성에 대비해 옮긴 것이다. 발해 천도에 대해 연구한 임상선(교과서문제연구소 소장) 박사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기에 천도하..
윤재운교수에 따르면, 발해의 강역은 10대 선왕(宣王)과 13대 대현석(대현석(大玄錫) 대에 가장 넓었다고 합니다. 발해의 영역은 대체로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서쪽은 요양과 요동에 미치고 있었으며, 북쪽은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거쳐 동쪽으로 연해주에 뻗쳐 있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송기호교수는 발해가 중국의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있었으며, 전체 넓이는 최소 50만㎢, 최대 65만㎢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한반도 면적을 22만㎢로 어림잡을 때 발해는 한반도 면적의 2.2배에서 2.8배에 이르렀고, 통일신라의 영역과 비교하면 발해는 3.8~4.9배에 이르렀으며, 고구려 전성기에 비해서도 1.5~2배 넓었습니다. 발해의 영토는 얼마나 넓었을까..

연해주서 고려인민족학교 운영 김 발레리아 교장, 연수차 방한…"모국 지원 절실""영화 '하얼빈'에 공감…안중근 의거 지원한 崔선생 이야기 적어 아쉬움도" 김 발레리아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 교장 [재외동포협력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코로나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후원금도 줄어 운영이 어렵지만 고려인 차세대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라서 학교 문을 계속 열어가려고 합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후손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최재형고려인민족학교의 김 발레리아(64) 교장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일대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학교명을 지은 만큼 어떻게 해서든 교육을 계속 이어갈 ..

고려인 디아스포라 형성 과정함경도 떠난 농민들 연해주 정착이 최초, 20세기엔 항일 독립운동 해외 근거지로소련, 고려인 번성에 소수민족 통제나서, 고려인들 3~4주간 열차 갇혀 이송당해“노인·젖먹이, 봇짐 진채 소리없이 옮겨져”, 노벨상 작가 솔제니친 작품서 묘사도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특정 민족의 집단 이주)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1937년 강제이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강제이주는 160년 고려인 이주역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다. 고려인들이 러시아 연해주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학계에서는 함경도에 거주하던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몰래 건너 연해주 지신허강 유역에 이주한 것을 최초로 보고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가난과 탐관오리의 수탈을 피해..

2024년 11월 20일 고려인·한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 문화 교류 행사가 러시아 연해주 아르촘에서 개막했습니다.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에 자리 잡은 아르촘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이 있고 고려인·한인 등이 많은 연해주의 도시로, 행사는 연해주 동북아평화기금, 고려인 청년 기업가단체 원동, 아르촘시, 동북아평화연대 등이 함께 마련했습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촘에서 20일 개막한 고려인·한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 문화 교류 행사에서 아르촘 칠성가무단이 부채춤을 선보였다. 고려인·한인 러시아 연해주 이주 16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최재형 선생과 여러 고려인 선조께 아룁니다. 고려인이 이 땅에 정착한 지 160주년이 됐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조상의 보살핌으..

(하) 중화민족주의에 옅어지는 조선족 정체성연변조선족자치주 가보니 정체불명 한복 차림 관광객 몰려들고 조선족 음식이라며 떡볶이·어묵 판매한국 문화와 뒤섞여 본연의 색채 상실, 민족 정체성 갈수록 약화‘한자 우선’ 정책에 한글 간판 밀려나고 거리 곳곳 ‘중화민족’ 강조하는 조형물 관례 깨고 연변大 학교장 한족 임명도 지난달 28일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의 중국조선족민속원. 영하 10도에 가까운 추운 날씨였지만 사진사를 대동한 관광객들은 저마다 한복을 표방한 듯한 옷을 차려입고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객들이 지난 2024년 12월 28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조선족문화원에서 한복을 표방한 듯한 복장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색동저고리처럼..

조선족인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에서 중국 55개 소수민족과 관련한 민족 이론·정책을 연구하다 1990년대 말 ‘조선족 위기설’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2012년 중국 조선족 학생들을 위한 ‘정음우리말학교’를 베이징에 세우고 지금까지 2000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훈민정음서 이름 딴 ‘정음우리말학교’베이징에 세워 졸업생 2000여명 배출한국어 가르치며 민족정신 고취 힘써 정신철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가 지난 2024년 12월 2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정음우리말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남한의 한국어나 북한의 조선어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학교 이름을 훈민정음에서 따와 ‘정음, 우리말’이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

신형식 백산학회 회장(상명대 초빙교수·한국고대사)은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도 드러나듯 간도는 명백한 우리 영토였고, 1909년의 청·일 간 간도협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무효”라며 “만일 정부가 제기하지 못한다면 국회와 학계에서라도 이 문제를 이슈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영돈 인천대 교수(국제법)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자신의 국익에 유리한 이론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외교적 마찰’ 운운하며 이런 논의를 스스로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조용한 조율’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삼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카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간도협정은 무효’ 명기된 국감자료집 수거후외교..

간도는 통상 남부 만주 지역 중 두만강 북쪽 땅(동간도)을 뜻하지만, 압록강 북쪽도 서간도로 불려왔습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조선과 청 나라가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만들 때 합의한 것처럼 조선 영토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이곳에서 땅을 개간하는 한국인이 급증, 간도협약 당시 동간도에만 10만 여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은 간도 조선인 보호용으로 두만강 인근에 변계경무서를 설치했습니다. 1902년엔 간도관리사 종3품 이범윤을 간도에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노무현 정부 때 중국 “간도 영유권 거론 말라” 요구 후“외교부가 왜 국감 자료집 회수하느냐” 제보 전화신구 자료집 비교해 보니 간도 협약 기술 바뀌어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