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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일연은 고려 후기에 『삼국유사』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고려 희종(熙宗) 2년(1206)에 태어나 충렬왕(忠烈王) 15년(1289)에 사망했다. 고종(高宗) 6년(1219), 설악산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수행을 거듭해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몽고 침입 후에 무주암에서 깨달음을 얻고 남해 정림사에서 대장경 제작에 참여했다. 이어 원종(元宗)의 부름을 받아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물며 설법하였다. 1277년부터 4년간 청도 운문사에서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 즈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1283년에 국사가 되었다. 휘는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 ‧일연(一然). 호는 목암(睦庵).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 성은 김(金)씨로 알려졌으나 ..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고대사에서 지금 남아있는 유일한 정사(正史)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아닌가, 그런데 그게 과연 믿을 수 있는 책인가? 사대주의 사상으로 쓰여진 책 아닌가?” ■ [유석재의 돌발史전] 삼국사기는 과연 사대주의 역사서인가? 삼국사기에 대한 세 가지 고찰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문화재청 저도 오래 전 청소년 시절에, 지금 표현하자면 ‘국뽕’이라 말할 수 있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때가 잠깐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막 출간된 ‘환단고기’를 읽고 나서 저 스스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렵 저는 “삼국사기는 사기품이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유사품이다”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의 역사학과에 진학하고 ..

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얼굴이 검고 우람하였으며 고금의 학식에 있어 김부식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신라 무열왕(武烈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