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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북애자(北崖子)는 조선후기 『규원사화』의 저자로 알려진 은사(隱士)이다.북애는 별호이며, 본명 등은 미상이다. ≪규원사화 揆園史話≫의 자서(自序)에 따르면,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전국 각처를 순방하였다. 이 때 지리와 역사, 특히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나 그 강역(疆域)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그의 저서로 전하여지고 있는 ≪규원사화≫는 고려 말 공민왕 때에 이명(李茗)이 지은 ≪진역유기 震域遺記≫와 중국의 사서(史書)를 참고로 하여 단군고사의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고조선의 실존과 그 고증에 기여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그는 모화사상에 물들어 사대주의만을 능사로 알았던 그 당시 통치자들의 기존 역사관을 과감히 비판하고 새로운 민족사관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다.(1) ..

서거정(徐居正, 1420년~1488년)은 조선 문종, 세조, 성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대구, 자는 강중(剛中), 초자는 자원(子元),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亭亭)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다. 1444년(세종 26) 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直長)을 지내고 이조 참의, 사헌부 대사헌(1478년), 의정부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집현전 박사(集賢殿博士)·부수찬(副修撰)·응교(應敎)를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문과중시에 급제, 이듬해 문신정시에 장원했다. 후에 공조참의(工曹參議)가 되어 1460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그 곳 학자들과 문장과 시(詩)를 논..

한국사학사 - Daum 백과 목차개요고대사학중세사학근대사학현대사학개요한국사학사는 크게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즉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시대구분이 아직 정설화되지 않았으므로 여러 견해가 있지만, 역사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시대구분은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고대사학은 역사서가 정식으로 편찬된 삼국 초기로부터 10세기초 신라의 멸망까지, 중세사학은 고려왕조와 16세기말의 조선왕조 중엽까지, 근대사학은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현대사학은 1945년 민족해방 이후의 역사학으로 구분한다. 고대사학 우리나라에서 역사학의 시작은 한자(漢字)가 전래되어 역사를 기록한 때부터이다.한자는 BC 2세기말 한군현을 통해 전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기록했다고..

'기록문화의 상징' 번역 30년…"가보지 않은 길, 다음 세대에 전해야"번역률 아직 37.4%…"고전 번역 연구 인력 양성·예산 확보 필요" 30년 묵묵히 맞춰온 역사 퍼즐…"승정원일기 번역은 신문 읽기"2024. 12. 31. 국보 '승정원일기'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얼마 뒤 갑자기 일어나 단을 내려가 오줌을 누었으므로 상 또한 일어나 단을 내려가 진 밖의 동쪽 모퉁이로 나가서 휴식하였다." 1637년 음력 1월 30일 삼전도.남한산성에서 고립무원 처지가 된 인조(재위 1623∼1649)는 청나라 태종 앞에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닿도록 숙이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했다. 병자호란의 패배를 인정하는 항복의 예였다. 우리 역사상 가..

실록은 권질(卷秩)의 방대함과 아울러 조선시대의 정치 · 외교 · 군사 · 제도 · 법률 · 경제 · 산업 · 교통 · 통신 · 사회 · 풍속 · 천문 · 지리 · 음양 · 과학 · 의약 · 문학 · 음악 · 미술 · 공예 · 학문 · 사상 · 윤리 · 도덕 · 종교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로부터 제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1,893권 888책. 필사본 · 인본. 정족산본과 태백산본 등이 일괄적으로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

고려사절요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 외 28인이 고려시대 전반을 편년체로 정리한 역사서이다. 『고려사』가 완성된 지 5개월여 만에 완성하였으며, 대체로 『고려사』를 축약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고려사』에 없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김종서는 조선전기 함길도 도관찰사,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83년(우왕 9)에 태어나 1453년(단종 1)에 사망했다. 1443년 함길도 도관찰사가 된 뒤 7, 8년간 북변에서 육진을 개척해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세종의 신임이 두터워 인사권을 전담하기도 했다. 1451년(문종 1) 좌찬성 겸 지춘추관사로서 『고려사』를 찬진했고, 1452년에는 『세종실록』과 『고려사절요』 편찬 책임관을 맡았다. 좌의정으로 단종..

'황제'를 '제후'로.. 조선이 '고려사' 고쳐 썼다 노명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지식산업사·2만2000원)에서 “역사학계는 ‘고려사’ 편찬의 직서(直書·그대로 씀) 원칙과 객관성을 과도하게 평가했고, 고려의 황제제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북한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 태조 왕건 상. 머리에는 황제가 쓰는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다. 동아일보DB 노명호 교수, 신간서 '고려사' 분석.. '고려 황제' 부정 현재까지 이어져 조선 초 편찬된 ‘고려사’가 사대명분론의 영향으로 고려의 황제국 제도를 제후국의 제도로 낮춰 서술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노명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료적 특성’(지식산업사·2만20..

“시문(詩文)을 지을 때에는 옛사람의 격식을 따르지 않고 거침없이 종횡으로 치달려서 그 기세가 끝도 없이 크게 펼쳐졌으며, 당시 조정의 중요한 문서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려사’ 이규보열전) 고려사에 실린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문장에 대한 평가다. 짤막하지만 시와 문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벼슬을 그만둔 후에도 외교 문서 작성을 도맡은 이에게 걸맞은 찬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규보가 살다 간 시기 고려는 무신 정권과 대몽 항쟁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내우외환이 겹친 상황이었다. 후덕한 인상의 이규보 초상화. 시와 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의 삶을 보여 주는 듯하다. 서울신문 DB #긴 기다림 끝 명예 얻었으나… 그의 인생 역시 거침없는 글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일..

이승휴(李承休, 1224년 ~ 1300년 11월 13일(음력 10월 2일))는 고려 후기의 문신·학자다.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다. 본관은 가리로, 가리 이씨의 시조다. 9세에 독서를 시작하여 12세에 신서(申諝) 밑에서 《춘추좌씨전》과 《주역(周易)》을 익혔다. 14세에 아버지 상을 입고 대부경(大僕卿) 임천부(林天敷)의 아내(외가 대고모)인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元氏) 밑에서 양육되었다. 그 후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고려 정부가 천도(遷都)한 강화도로 들어가서 낙성재(樂聖齋) 도회소(都會所)에서 수업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우 관계를 맺게 된다. 29세가 되는 1252년(고종 39년)에 과거 시험에 급제했다. 과거 급제 후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으로 금의환향했으나..

■ [선도문화 1편] 창세신화 마고를 말하다 강원도 한탄강 멍우리협곡. 사진 한국관광공사.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지경리에는 수직 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루는 한탄강 줄기가 ‘마귀할멈이 지팡이 끌고 간 자리’라고 하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이 무시무시하게 큰 마귀할멈은 인류의 첫 어머니이자 세상을 창조한 여신 ‘마고’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죠. 소설 〈마고〉(2022년, 현대문학)를 쓴 한정현 작가는 “마고는 세상을 창조한 여성신이지만 조선과 일제를 지나면서 남성적 시각으로 해석, 사람을 해치는 마귀할멈으로 전락한다”라고 했습니다. 한민족의 창세신화 마고이야기. 사진 국학원 제공. 우리에게 창세신화 마고가 참 낯설기도 합니다. 한국인 대부분 서양의 아담과 이브 창세신화나 그리스‧로마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