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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백제계 망명 관리의 지도 아래 축성된 성에서 발견된 백제 금동보살입상과 백제 성씨인 ‘진씨(秦氏)’ 목간…. 지난 2007년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縣) 북부의 야마가시(山鹿市) 기쿠치성(鞠智城) 북부 저수지에서 의미심장한 유물들이 발견됐다. 저수지 북쪽 1.5m 지하에서 발굴된 유물 중 손꼽히는 것이 바로 금동보살입상 1점과 ‘秦人忍□五斗’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간 1점이다. 그러나 한국학계에서 이 유물들과 관련된 연구는 없었고, 따라서 제대로 공개된 적도 없다. 일본 구마모토현 백제계 성인 기쿠치성 저수지에서 확인된 금동불상. 보주나 항아리, 그릇을 공손히 받든 이른바 봉지보주형 보살상이다. 오른쪽은 발굴품을 토대로 일본에서 제작된 복원품이다.|이장웅 한성백제 박물관 학예연구사 제공 2019년 2..

전남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발굴조사에서 영산강 유역에 조성된 장고분(장고 모양을 닮은 고분)의 구조와 축조공법을 밝힐 수 있는 단서가 확인됐다.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전남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 16-2번지 일원)은 영산강 유역에 분포하는 장고분 중 유일하게 다수의 다른 원형 고분들과 함께 고분군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 중 하나이다.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고분의 구조와 축조방법, 조영 순서를 밝혀 유적 경관을 복원하고, 보존·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21년부터 연차적으로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함평 마산리 표산고분군 발굴조사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장고분의 구조와 축조공법을 추정할 수 있는 여러 단서를 확보했다. 장고분의 분구(..

김현희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신덕고분은 30년전 발굴 당시 일본의 고대 무덤 형태를 보이고 있어 연구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연구를 한 결과 발굴된 유물이 백제와 왜 문화가 혼합돼 있어 고분의 주인은 백제와 왜에 영향력이 있는 집단의 수장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광주=뉴시스] 국립광주박물관은 1991년 3월 발굴된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에 대한 연구결과가 이달 말 발표된다고 10일 밝혔다. 사진 위 왼쪽부터 둥근 구슬' '금동관' '말띠 꾸미개', 사진 아래 왼쪽 '연리문 유리구슬' '굽다리 접시' '짧은 목 항아리와 돌 뚜껑'. (사진=국립광주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발굴 당시 고분에서는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 일부와 치아..

그 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왜(倭)가 일본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키가 작다'는 의미의 '왜(矮)'라는 말과 결합하여 일본인들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어왔습니다.그러나 왜인(倭人)이라는 말은 현재 산동(山東)·베이징(北京)이나 요동(遼東) 지역, 황해 도서지역, 한반도 남부 해안 및 도서지역,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살아온 사람들로 결국은 말갈이나 물길의 다른 표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왜(倭), 한국인들의 이름 ***한국과 일본, 그 끝없는 싸움의 시작** 『겨울 연가(冬のソナタ)』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방영할 당시에는 시시콜콜한 남녀간의 사랑 얘기라고 생각하여 ..

결국 요동부여 지역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근초고왕(부여계)은 한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마한의 모든 국가들을 정복하였고(『日本書紀』神功 49年), 371년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입니다(『三國史記』百濟本紀 近肖古王).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반도 부여인들이 일본열도를 정복하고 야마도 왕국을 세운 것이지요. 즉 4~5세기 경 대륙의 부여인들이 한반도로 거쳐 바다를 건너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4세기 전반에 규슈로 갔고, 이 지역을 정벌하고 야마도 왕조를 건설하는데 대략 1세기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일본이 부여의 분국인 열네 가지 이유 ***백제와 왜, 영원한 부여의 아들**"주류성이 함락되고 말았구나(州流降矣).어찌할꼬 어찌할꼬(事无奈何)..

일본의 신화를 통해서 보면 고대 일본의 건설은 가야인과 반도부여인(백제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초기에는 스사노오(가야 마이너 그룹)가 주축이 되어 동해를 건너 시마네(島根)의 이즈모노쿠니(出雲國) 등에서 일본 초기의 야요이 문화(彌生文化)를 주도했으며, 후기에는 반도부여인(백제인)ㆍ아마테라스(가야 메이저 그룹)들을 중심으로 규슈를 정벌하고 그 여력을 몰아서 내해의 세토나이까이(瀨戶內海) 지역으로 동쪽으로 정벌해 나아가 야마도 시대를 열어갑니다. 사실 가야계는 제대로 된 거대국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으므로 후에 백제계가 일본의 건국을 주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일본 신(神)들의 고향, 경상남도 거창 연오랑ㆍ세오녀(延烏郞·細烏女) 이야기 아시죠? ..
‘왜가 4세기 가야를 정벌했다.’, ‘일본의 지배자 혈통은 서기전 660년부터 한 번도 단절된 적 없이 이어온 만세일계의 왕가다.’ 현재 일본 젊은이들이 배우는, 어이없을 정도로 왜곡된 고대사다. 4~7세기 고대 일본을 장악한 것이 한국계 혈통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얼마나 실망할까.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직후, 존 카터 코벨이 한·중·일 고대 역사서 연구를 통해 일본의 역사왜곡을 낱낱이 파헤친 미공개 논문을 최초로 소개한다. 일본열도는 서기369년 부여족이 정복, 일본신도는 한국무당의 후예... 369년 부여족이 왜(倭) 정벌, 신도(神道)는 한국 무속신앙에서 유래 일본인들의 9할은 제 나라의 진짜 역사를 모른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일본 교육부는 국가..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5.6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구려는 황제국임을 보여주고 연호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세 고주몽성제, 연호는 평락, 2세 유리명제, 3세 대무신열제, 6세 태조무열제, 연호는 융무, 10세 산상제, 11세 동천제, 19세 광개토경호태황, 연호는 영락,20세 장수홍제호태열제, 연호는 건흥, 21세 문자호태열제, 연호는 명치, 25세 평강상호태열제, 연호는 대덕, 26세 영양무원호태열제, 연호는 홍무, 27세 영류제, 28세 보장제, 연호는 개화 등 황제라 칭하였으며 연호를 사용하였다. 연타발, 소서노, 을파소, 을지문덕, 연개소문, 을밀이 나오고, 백제, 신라, 왜의 력사도 나온다. 고구려의 천도과정을 보면 고주몽성제가 평락 11년 갑오(단기 2307년, B..

왜 일본에서는 신라를 철저하게 미워하고 배타시해 왔을까. 이 큰 의문점 때문에 필자는 오랜 세월 일본 속의 신라 연구에 집중해왔다. 일본왕실이 9세기 초엽부터 역사 문서에 공공연하게 신라를 적대시해온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결론적으로 그 미스터리는 일본의 국가종교가 된 ‘일본 신도(日本 神道)’의 뿌리가 다름 아닌 고대신라의 신도(神道)였다는 사실을 일본왕실이 숨기려 발버둥친 데 있다. 필자는 그 역사의 내막을 일본 고대 문헌 등을 통해 낱낱이 고증 분석했다. 日王, 한국말로 신라神 모신다일본 神道의 비밀洪潤基 입력2004-11-17 14:00:00 고대 일본이 신라를 배격하며 적대시한 사실은 일본왕실 문서에 그 증거가 나타나 있다. 천황가의 법령 주석서인 30권짜리 ‘영집해(令集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