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2. 고려의 강역 (3) 고려의 북계 본문
고려의 강역을 알아봅니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고려의 강역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 2014년 검정 교과서의 북방강역,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까지였던 고려국경이 함경남도 남쪽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추종하는 것이다.(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출처;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고려 강역은 한반도의 2/3인가? (kgnews.co.kr))
■ 고려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그런데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 서북은 압록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았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압록(鴨綠)은 요하이고, 선춘령은 두만강 위로 700리 되는 곳입니다.
『고려사 권56 志 지 권 제10 지리1(地理 一) 지리 서문
지(志) 권제10(卷第十) 고려사56(高麗史五十六)
정헌대부 공조판서 집현전대제학 지경연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正憲大夫 工曹判書 集賢殿大提學 知經筵春秋館事 兼 成均大司成) 【신(臣)】 정인지(鄭麟趾)가 교(敎)를 받들어 편수하였다.
지리1(地理一)
우리 해동(海東)은 삼면이 바다에 막혀 있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는데, 그 폭과 둘레는 거의 10,000 리(里)나 된다.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고구려(高句麗) 땅에서 일어나 신라(新羅)를 항복시키고 백제(百濟)를 멸망시켜, 개경(開京)에 도읍을 정하니, 삼한(三韓)의 땅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
그 이후로 5도(五道)·양계(兩界)를 정하니, 양광(楊廣)·경상(慶尙)·전라(全羅)·교주(交州)·서해(西海)·동계(東界)·북계(北界)가 그것이다. 모두 합하여 경(京)이 4개, 목(牧)이 8개, 부(府)가 15개, 군(郡)이 129개, 현(縣)이 335개, 진(鎭)이 29개이었다. 그 사방 경계[四履]는, 서북은 당(唐) 이래로 압록(鴨綠)을 한계로 삼았고, 동북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삼았다. 무릇 서북은 그 이르는 곳이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은 그것을 넘어섰다. 이제 대략 사책(史策)에 나타난 연혁에 근거하여 지리지(地理志)를 짓는다.』
(출처; 고려시대 사료 DB,
https://db.history.go.kr/goryeo/level.do?levelId=kr_056r_0010_0010&types=r)
【서울=뉴시스】한국 역사학계는 고려의 국경을 <왼쪽>처럼 인식하고 있다. <오른쪽>은 일본의 의도적 왜곡을 거둬내고 ‘고려사’, ‘요사’ 등 사서에 기반해 고증한 고려의 국경선이다.
윤한택 교수(인하대 고조선연구소)는 “압록강(鴨淥江)은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을 관통해 흐르는 랴오허, 압록강(鴨綠江)은 북한과 중국 국경선인 압록강”이라고 못 박았다. 고려의 서북 국경에는 압록강이 둘 있었다.
국경선으로서의 압록강(鴨淥江)과 후방방어선으로서의 압록강(鴨綠江)이다. 압록강(鴨淥江)은 보주(保州), 압록강(鴨綠江)은 의주(義州)가 거점도시였다. 보주는 의주방어사가 관할했다. “고려의 서북 국경선은 고려 전체시기를 통해 변함없이 압록강(鴨淥江)이었다.”
윤 교수는 압록강(鴨淥江)으로 추정되는 현 랴오허 유역에 천리장성이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1084년 시점 압록강(鴨淥江) 연안 요 수비병의 규모는 1부, 1주, 2성, 70보, 8영에 합계 정병 2만2000명이었다’는 고려의 기록이다. 남쪽은 요나라의 동경성에서 시작해 서북으로 황룡부에 이른다.
이 지명들을 보면 요나라의 동경성은 현 랴오닝성 랴오량(遼陽)시, 황룡부는 지린성 중북부다. 즉, 천리장성은 현 압록강변이 아니라 랴오허 유역에 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출처; “중국 철령까지 우리땅”…일제왜곡 극복, 고려국경 찾았다.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newsis.com) 2017.05.23 )
■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다.
《고려사》 〈지리지〉는 동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종 2년(1107) 평장사(平章事) 윤관이 원수(元帥)가 되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로 삼아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아내고 9성(城)을 두었는데, 공험진 선춘령(先春嶺)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고려사》 〈지리지〉 동계)”
공험진 선춘령에 이곳까지 고려의 강역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윤관은 예종 2년(1107) 고려군이 되찾은 강역에 함주(咸州)·복주(福州)·영주(英州)·길주(吉州)·웅주(雄州)·통태진(通泰鎭)·진양진(眞陽鎭)·숭녕진(崇寧鎭)·공험진(公嶮鎭) 등의 9성을 설치하고, 공험진성 선춘령에 ‘고려의 강역이다’라는 뜻의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세종은 김종서에게 사람을 시켜서 공험진 선춘령에 가서 이 비석을 찾아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공험진에는 내·외방어소(內外防禦所)가 있었는데, 내방어소는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자리에, 외방어소는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공험진에 두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구절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공험진’이라는 말이다. 공험진이 함경도 이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두만강의 경원도호부에서 북쪽 공험진까지 정확하게 688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학자들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다고 말해왔다.
(출처;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고려 강역은 한반도의 2/3인가? (kgnews.co.kr))
▲ 중국에서 지금의 심양시 남쪽 진상둔진 탑산각 아래의 옛 철령성 자리에 세워놓은 봉집보 표지석.(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 철령은 심양 남쪽 진상둔진 봉집보에 있는 철령이다.
철령은 지금의 중국 요녕성 심양 남쪽의 진상둔진 봉집보(奉集堡)에 있는 철령이다. 고려 우왕 14년(1388) 명나라에서 봉집보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우왕과 최영이 이 땅은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고려강역이라면서 요동정벌군을 북상시켰던 곳이다.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요녕성에 있었다는 사실은 다름 아닌 중국측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먼저 세계최대의 온라인 백과사전이라고 선전하는 중국의 《백도백과(百度百科)》는 철령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명나라 때 은주(銀州)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가 명 홍무(洪武) 26년(1393)에 철령위를 심양과 개원(開原) 사이에 있던 옛 은주 땅으로 이주했다. (철령위의) 남부 강역은 요동도지휘사 철령위에 소속되었고, 서부는 요하의 부여위(扶餘衛)와 겹쳐서 속해 있었고, 북부는 삼만위(三萬衛)에 속했는데, 겸하여 한왕(韓王) 주송(朱松)을 철령, 개원에 봉했다.”
철령위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사서는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일 것이다. 《명사》 〈지리지〉는 ‘철령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철령위는 홍무 21년(1388) 3월 옛 철령성에 설치했다. 홍무 26년(1393) 4월 옛 은주(嚚州)땅으로 이전했는데, 곧 지금 다스리는 치소다. 철령은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있고 남쪽으로 범하(汎河)가 있고, 또 남쪽으로 소청하(小淸河)가 있는데 모두 흘려서 요하로 들어간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은 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요하는 요녕성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함경도 안변 서쪽에는 요하고 범하고를 막론하고 강 자체가 없다. 철령 서쪽에 요하가 있다는 구절 하나만으로도 철령위는 함경도 안변이 아니라 요하가 흐르는 요녕성에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철령) 남쪽에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1396) 이곳에 의로천호소(懿路千戶所)를 설치했다. 또 범하성(范河城)이 철령위 남쪽에 있는데, 범하성(汎河城)이라고도 부른다. 정통(正統) 4년(1439) 이곳에 범하천호소(汎河千戶所)를 설치했다.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으로서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년에 봉집현을 설치했다가 곧 폐지했다(《명사》 〈지리지〉 철령위)」
《명사》 〈지리지〉에서 말하는 주요 내용은 셋이다. ①철령위 서쪽에 요하가 흐른다. ②봉집현이라는 곳이 주원장이 홍무 21년(1388) 원래 철령위를 설치했던 곳인데, 고려에서 반발하자 1393년 지금의 철령시 은주구로 옮겼다. ③봉집현이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곳이다. 곧 고려와 국경을 이루고 있던 곳이 봉집현이다. 따라서 이 봉집현이 어디인지를 찾으면 명나라에서 설치했던 철령위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
(출처;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두 개의 철령 (kgnews.co.kr))
두만강 북쪽700리 압록강 북쪽600리까지 고려 조선의 진짜 강역을 찾아서
https://youtu.be/LBXxyg84y7I?list=PLRAmvpNm4pmkdvoOHrBAtkvZLPWHkMMQs
고려 국경의 사실ㅣ복기대 소장 인하대 고조선연구소ㅣ대한사랑 학술위원 최신연구발표
<참고자료>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공민왕이 수복한 땅이 함경도라고? (kgnews.co.kr)
고려말 우리국토, 만주까지였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18.04.21
고려의 동북강역은 고구려 보다 넓었다.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2017.05.31
고려의 강역은 어디까지인가?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 2016.05.26
한국고대사 | 고려 영토는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도 있었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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