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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라 문화유산 (6) 신라 황금장식 보검

대야발 2025. 1. 1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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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년 전 신라 청년 무사가 찼던 황금장식 보검(국가지정 보물)이 최근 영국 런던의 전시장으로 날아가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런던 브리티시박물관이 2024년 9월 26일 시작한 특별기획전 ‘실크로드’(내년 2월23일까지)가 그 자리입니다. 

 
 
영국 브리티시박물관의 ‘실크로드’전을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경주 계림로 14호분 출토 황금장식 보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이 대여한 신라 실크로드 관련 유물 8건 중 하나로 전시장 들머리 진열장에 나온 보검은 동서 실크로드 교류 역사를 상징하는 전시 간판 유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박물관 쪽은 누리집 전시 정보에 이 황금보검을 13개 대표 작품(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선정해 집중 소개했다.

 

 

1973년 경주 계림로 배수로를 정비하다 드러난 젊은 신라 남성의 돌무지 무덤(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이래 50여년간 국립경주박물관 진열장을 지켰던 보검은 금제 칼 손잡이에 붉은 석류석을 박고 태극무늬 등으로 수놓은 것이 특징이다. 옛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장식 디자인 요소가 뚜렷하고,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유적 출토품과 중국 신장 키질 벽화에도 닮은 유물이 확인돼 한반도를 대표하는 서역계 유물로 꼽힌다.

 

 

브리티시박물관 솔즈베리관 진열장의 신라 실크로드 유물들을 현지 직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맨 왼쪽에 있는 경주 배동 출토 중국청자+신라토기 뼈단지와 경주 용강동 출토 삼채뼈단지,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된 감은사 터 동탑의 사리장엄구, 용강동 출토 서역인·문관 토용(흙인형)이 잇따라 진열된 모습이 보인다. 전시 개막 전 준비 현장을 찍은 사진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보검 외에도 경주 배동에서 출토된 중국 청자 뚜껑 달린 뼈단지와 사천왕상이 돋을새김된 감은사 터 동탑의 사리장엄구, 경주 용강동 출토 서역인과 문관의 토용(흙인형), 노서동 출토 금제 목걸이, 천마총 출토 푸른빛 유리항아리 등 최상급 유물들이 함께 나왔다.

 

 

현지 박물관 전문가들은 황금 재질에 붉은빛 석류석과 유리로 사다리꼴 형상의 표면을 장식한 보검이 영국 서퍽 지방의 앵글로색슨 왕의 7세기 배무덤 유적 서튼후에서 출토된 어깨걸이 장식과 상통하는 요소가 보이는 데 놀라워하며 표면에 박힌 광물의 원산지 공동 연구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전시 유물 호송관으로 현장에 갔던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사는 “겹겹이 쌓인 포장을 풀고 보검의 전모가 공개되는 순간 현지 큐레이터와 보존과학 전문가들이 크게 탄성을 지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영롱한 장식 광물의 광채와 온전한 보검의 형태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실크로드’전을 열고 있는 브리티시박물관 솔즈베리관 4번째, 5번째 진열장의 신라 실크로드 유물들. 맨 오른쪽에 경주 계림로 14호분 출토 황금장식 보검이 놓였고, 그 옆으로 경주 용강동 출토 서역인과 문관의 토용(흙인형), 감은사 터 동탑의 사리장엄구가 잇따라 진열된 모습이 보인다. 전시 개막 전 준비 과정에서 찍은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전시는 ‘실크로드가 동서로 이어지는 단일 무역로가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영국, 스칸디나비아에서 마다가스카르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연결하는 중첩된 네트워크’란 전제를 깔고 꾸려졌다. 근대기 이후 국가 영역이 아닌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출품작들을 구획해 교류상의 역사를 펼쳤다. 일본 고대 나라시대의 도읍 헤이조쿄(평성경)를 시작으로 신라의 금성(경주)과 중국 당나라 장안(서안)과 돈황을 거쳐 사마르칸드, 이스탄불, 로마, 서튼후와 스코틀랜드까지 실크로드 영역을 다각도로 확대하면서 새롭게 조명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있는 소그드왕국의 유적 아프라시압 벽화 남벽 일부를 떼어와 전시한 것이나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호탄에서 출토된, 뽕나무 씨앗과 누에 알을 숨기고 시집온 당나라 공주의 초상 패널화 등이 핵심 출품작으로 눈길을 모은다. 박물관 쪽은 함순섭 국립경주박물관장 등 세계 각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시 연계 심포지엄도 12월 초 열 계획이다.

한겨레. 노형석 기자. 2024. 10. 18. (1)

 

 

 

 

1973년 6월, 경북 경주의 대릉원 옆으로 계림로를 개설하는 공사를 하다가 6세기 신라 고분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배수로를 파면서 우연히 무덤으로 보이는 돌무지가 삽에 걸리는 바람에 발굴이 이루어졌지요.

 

 

고대로마서 제작→실크로드→신라 유입 추정

 
 
 

로마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635호 황금 장식 보검. 이밖에 금령총 출토 청색 반점무늬 유리잔은 옛 로마식민지인 독일 쾰른 지방이 원산지이고,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봉황머리 모양 손잡이 병은 서방유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제공

 

 

 

‘계림로 14호분’으로 이름 붙여진 이 무덤은 길이 3.5m에 너비 1.2m로 대릉원 일대에 있는 고분으로는 크기가 작았지만 왕릉에 버금갈 만큼 화려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봉분이 흔적도 없이 깎여나간 위에 민가가 지어져 있었기에 오랜 세월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무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출토품은 피장자의 허리춤에서 나온 황금 장식 보검이었습니다. 길이가 36㎝에 이르는 이 보검은 황금으로 장식하고 군데군데 홍마노를 깎아 넣어서 격조 높은 색조의 조화를 이루고 있지요.



당시 보검의 출현에 학계는 긴장했습니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기 때문이지요. 보검을 자세히 보면 테두리와 내부가 수많은 금 알갱이로 장식되어 있는데, 바로 그리스 로마 양식인 누금 기법이라고 합니다.



이후 이 보검이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서 제작된 것인지, 수입품인지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은 외국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시각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2001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신라황금’특별전에 출품되었을 때도, 아예 ‘외래품(Imported Goods)’ 코너에 진열되었으니까요.



신라는 서역과 문물교류가 매우 활발했던 만큼 계림로 14호분 자체가 외국인의 무덤이 아니었겠느냐는 추측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모양의 보검은 해외에도 유례가 드문데, 카자흐스탄의 보로로에 지역에서 출토된 칼과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자치주에 있는 키질 제69굴의 벽화에 그려진 무사의 칼이 가장 비슷합니다. 모두 실크로드의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이 보검의 제작지를 로마 세계와 직접 연결시킨 사람은 일본학자 요시미즈 쓰네오(由水常雄)입니다. 그는 2001년 일본에서 출간된 뒤 2002년 국내에서도 번역된 ‘로마 문화 왕국, 신라’에서 일찍부터 그리스·로마 문화를 받아들인 다뉴브강 남부 트라키아 지방의 켈트족이 이 보검을 만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요시미즈는 켈트 지배자의 사신이 직접 신라로 가져왔거나 신라의 사절이 그곳에서 하사받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실크로드 상인이 신라의 고위층에게 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이 정도의 최상급 의례용 보검이라면 상거래 대상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트라키아는 375년부터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한 훈족, 즉 흉노의 근거지입니다. 유럽을 100년 동안이나 공포로 몰아넣은 아틸라의 본거지이지요. 게다가 장식 보검은 아틸라가 유럽을 제패한 시기, 로마와 이집트, 서아시아에서 유행한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신라·서역교류사’를 쓴 정수일 교수는 4∼6세기 신라와 로마 사이에 이렇듯 상상을 초월한 만남이 있었던 것은 흉노 등 실크로드로 서역과 교류하던 유목민족 국가가 통로 역할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로마 세계에서 만들어졌지만 신라의 수도 경주에 묻힌 황금 장식 보검이라는 것입니다. 서울신문. 서동철기자.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7) 계림로 14호분 출토 황금장식 보검' 2007-09-27 (2)

 

 

 

 

신라가 중국 대륙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교역했다는 사실은 유물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라와 서역의 교류 실상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2013년 '제2회 경주 실크로드 국제학술회의'는 관련국 학자들이 신라와 서역의 교류에 대한 의문점을 따져보는 자리였습니다.

 

 

서양식 황금보검, 로마풍(風)의 대형 유리병, '서역인(西域人)' 무인석상….

 

①신라 왕실의 뿌리는 중앙아시아?

 

4~6세기 신라 왕실의 무덤 적석목곽분(積石木廓墳)은 고대 중앙아시아 스키타이족의 무덤 쿠르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신라 왕실이 이 지역에서 온 유목·기마 민족이라는 학설이 제기된다.

 

 

신라 고분의 서역 관련 유물들. 왼쪽은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나온 황금보검, 가운데는 황성동 석실 고분에 부장된 토용(土俑), 오른쪽은 괘릉 앞 무인 석상이다.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은 "쿠르간은 중앙아시아에서 2~3세기에 사라지고, 몽골초원 등 중간 지대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양자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신라 왕실의 기원을 중앙아시아나 흉노와 연결하는 것은 비학문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마세프 카자흐스탄학술원 고고학연구소 이스타나분소장은 "중앙아시아의 쿠르간은 4~5세기에도 나타나고 두 지역의 유물이 비슷하기 때문에 연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인숙 한성백제박물관장은 "4세기 이후 신라에서 금 제품이 많고 김씨(金氏) 왕조가 성립하는 것은 금을 중시하고 기동성이 뛰어났던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이주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②괘릉 무인석상은 서역인?

원성왕릉으로 추정되는 괘릉 앞의 '서역인' 석상(石像)에 대해 아나르바예브 우즈베키스탄학술원 고고학연구소 부소장은 석상과 사마르칸트 벽화의 유사성을 들어 "석상의 주인공은 사마르칸트에서 온 소그드인(人)"이라고 주장했다. 7~8세기 실크로드 전역에서 활동했던 소그드인의 일부가 신라에 들어와 공을 세운 것을 치하해서 석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반면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소그드인이 2만명이나 됐던 당나라도 황제릉 앞에 서역인상은 없었다"며 "당보다 폐쇄적이었던 신라가 왕릉 앞에 외국인 석상을 세웠을 리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성왕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사찰의 금강역사와 사천왕상은 서역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③신라 문화는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신라 고분의 유물 중 가장 이색적인 황금보검과 로만 글라스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요시미즈 쓰네오 일본 노도지마글라스공방 회장은 "황금보검은 양식·문양·재질로 보아 중부 유럽에 살았던 켈트족 왕이 선물한 것"이라며 "신라 왕관의 형태(수목관·樹木冠), 로만 글라스, 각배(角杯), 사슬 장신구도 신라가 로마 문화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황금보검의 양식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에서 출토된 단검과 비슷하고 기술은 동로마에서 기원했다"며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집단이 동유럽의 장인에게 주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이선민 선임기자. '신라 황금보검은 로마 문화에서 비롯됐다?' 2013.07.08. (3)

 

 

 

 

 
 

 

 

 

 

 

 

 

 

 

<자료출처>

 

 

(1) https://v.daum.net/v/20241018100041108 한겨레 2024. 10. 18.

 

 

 

(2)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37) 계림로 14호분 출토 황금장식 보검 | 서울신문 (seoul.co.kr)2007-09-27 

 

 

(3) 신라 황금보검은 로마 문화에서 비롯됐다? (chosun.com).2013.07.08.

 

 

 

<참고자료>

 

 

신라 '황금보검'의 실체와 주인은 누구?:플러스 코리아(Plus Korea) 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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