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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무령왕의 뒤를 이은 성왕은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고쳤다. 성왕은 신라 · 가야와 연합하여 고구려군을 한강 유역에서 몰아내고 백제는 한강 하류유역을, 신라는 한강 상류유역을 차지하였다.이 시기에 백제 공주가 신라에 시집가는 등 백제와 신라의 관계가 매우 우호적으로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말년에 신라가 배신하여 백제의 동북변을 차지하자 성왕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신라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성왕의 뒤를 이은 위덕왕은 중국의 남조와는 물론 북조(당시의 북제)와도 우호관계를 맺었는데, 북제는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라는 작위를 내렸다. 이는 백제가 동청주를 지배하는 것을 승인한 것이다. 백제는 일찍이 서기 245년경에 중국의 동북부에 ..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발해연안문명의 여명을 밝히다부여의 갑골 습속 (naver.com)부여국(扶餘國)의 유적지 분포도 부여(扶餘, 혹은 夫餘)는 우리나라 고대 국가 중의 하나로서 발해연안북·동부 지구에 위치했다. 부여에서는 제사·군사·정치면에서 고대 동방 사회의 중요한 신앙 활동의 하나인 갑골을 통하여 점복을 행하고 있었음을 사서(史書)를 통해서 알 수 있다.우선 중국의 진(晋)나라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 보면, “군사라든가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소를 잡아 그 굽뼈를 보고 좋고 나쁨을 점친다. 이때 소의 발굽이 벌어져 있으면 흉하고, 합해져 있으면 길하다고 판단하여 일을 행하였다[有軍事 亦祭天 殺牛觀蹄 以占吉凶 蹄解者爲凶 合者爲吉]”고..
신채호 조선상고사선비족 대 고구려의 관계고구려와 한나라의 중간에 선 탓에 고구려를 도우면 고구려가 이기고 한나라를 도우면 한나라가 이기는 식으로 양국의 승패를 좌우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선비(鮮卑)라 불린 종족이다. 선비족이 조선의 서북쪽인 몽골 지역에 거주하다가 흉노족 모둔에게 패해 본거지를 잃고 외흥안령·내흥안령1) 부근으로 이주했다는 점은 제2편 제3장(제3편 제2장 조선 분립 이후의 신조선의 착각인 듯하다_옮긴이)에서 서술했다.그 뒤 선비족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여전히 선비라고 불렸고, 또 하나는 오환(烏桓)이라고 불렸다. 둘은 언어나 풍속이 거의 동일했다. 이들은 짐승 고기를 먹고 짐승 가죽을 입으며 목축과 수렵으로 생활했다. 각각 읍락에 나뉘어 살았는데, 전체 부족을 관할하는..
홍원탁 [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거란족의 요(遼)를 여진족 금(金)이 대체 2005.08.08 동부 만주 삼림 속에서 살던 여진족은, 서 만주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 요 왕조가 운영하던 2원 통치조직의 효용성을 일찍이 체득했고, 1126년에는 북중국 전체를 정복했다. 중국 역사상 1126년이란 한족이 만주족 왕조에 의해 두 번째로 중원으로부터 쫓겨난 사건을 상징한다. 고려와 금 나라의 창건자들은 모두 옛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천명했다. 왕건은 신생왕국을 고구려를 본 따 고려라 불렀고, 금 나라는 실제로 만주 전체를 점거했다. 금사(金史) 기록을 보면, 완안부 시조 자신이 본래 고려(혹은 고구려)에서 왔고, 여진과 발해는 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고려를 신라의 후계자로..
2015.08.05 09:49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코드를 찾아서(1)- 전원철 박사 인터뷰 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economychosun.com) 이상흔 조선pub 기자 130호 6월호에는 북방민족사학자 주몽예씨의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 왕가(王家)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도발적인\' 기고문이 한편 실렸다. 주몽예씨는 칭기스 칸 연구를 위해 29개국 언어로 된 사서를 읽고 이를 전부 비교대조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한다. 그의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몽예씨의 본명은 최근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1. 2권》을 펴낸 전원철 박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은 그가 칭기스 칸 연구에 뛰어든 계기와 기고문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직접..
민성욱 말갈과 한민족 국가 간의 관계K스피릿 입력 2021.07.07 09:02 기자명민성욱 박사 [칼럼] 민성욱 박사 말갈은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국가 또는 집단과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만주지역에서 비롯되었던 한민족의 여러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기록상으로 『삼국사기』 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갈 관련 기록과 중국 정사 중 「동이열전」에 등장하는 말갈계 종족들의 기록들, 『수서』이후에 등장하는 말갈은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에는 「동이열전」에서 시작해서 「북적열전」으로 이어지는 관련 기록이 많아 남아 있다. 일본사서에는 『속일본기』,『유취국사』 등에 말갈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말갈은 스스로 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