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1. 가야(가라) (1) 가라 6국의 건설 본문
가라 6국의 건설
지금의 경상남도 일원에 변진(弁辰)의 열두 자치국이 세워졌다는 점은 제3편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에서 설명했다. 이들 자치국은 흔히 가라로 불렸다. 가라는 ‘큰 못’이란 뜻이다. 자치국들이 둑으로 물을 막고 큰 연못을 만든 뒤 그 부근에 자치부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가라는 이두로 가라(加羅)·가락(駕洛)·가야(加耶)·구야(狗耶)·가야(伽倻) 등으로 표기됐다. 야(耶)·야(邪)·야(倻) 등은 고어에서 ‘라’라 발음됐다. 가라는 관국(官國)으로도 표기됐는데, ‘관’에서 초성 ‘ㄱ’과 더불어 중성 ‘ㅘ’의 ‘ㅏ’을 떼어 ‘가’로 읽고, ‘국’의 뜻인 ‘나라’에서 한쪽을 떼어내어 ‘라’로 읽은 것이다.
서기 42년 무렵에, 아홉 가라의 지도자인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간·유수간·유천간·신천간·신귀간·오천간이 지금의 김해읍 구지봉에 모였다. 이들은 대계(大稧, 계는 당시 자치회의 이름)를 열고 김수로 6형제를 6가라의 군장으로 추대했다.
김수로는 제1가라 즉 김해를 다스린다고 하여 ‘신가라’로 불렸다. ‘신’은 ‘크다, 머리’의 뜻이니, 신가라를 금관국이라 표기한 것은 타당하다. 가락 혹은 구야는 둘 다 가라의 이두이므로, 이것으로 6가라를 총칭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을 신가라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제2가라는 밈라가라다. 오늘날의 고령 앞을 흐르는 물을 막고서 만든 가라다. 이두로는 미마나(彌摩那) 혹은 임나(任那)로 표기했다. 6가라 중에서 후손 때에 가장 강력해졌기에, 역사에서는 대가라 혹은 대가야라고 불렀다.
제3가라는 안라가라다. 오늘날의 함안 앞을 흐르는 물을 막고서 만든 가라다. 이두로는 안라(安羅)·아니라(阿尼羅)·아니량(阿尼良)으로 표기했다. 아니량이 아호라(阿戶羅)로 와전되고 아호라가 아라(阿羅)로 와전됐다.
제4가라는 고링가라다. 지금의 함창이다. 이곳 역시 물을 막고서 만든 가라다. 이것도 이두로 표기된 지명이다. 고링가라가 와전돼서 ‘공갈’로 바뀌었다. 공갈못이라는 저수지가 그 유적이다. 6가라 유적 중에는 오직 이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그 속의 연꽃과 연잎은 수천 년 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광무 연간에 황제의 총애를 받은 이채연이 논을 만들고자 둑을 트는 바람에 폐허가 된 곳이다.
제5가라는 별뫼가라다. 이곳은 별뫼라는 산에 만든 가라로 지금의 성주를 가리킨다. 이두로는 성산가야 혹은 벽진가라로 표기했다.
제6가라는 구지가라다. 지금의 고성(固城) 중도(中島)다. 이 역시 물을 막고서 만든 가라다. 이두로는 ‘고자가라’로 표기했다. 6가라에서 가장 작아서 소가야로도 불렸다.
여섯 가라는 처음에는 형제들의 연맹국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촌수가 멀어져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삼국사기》에서는 〈6가라 본기〉를 두지 않고, 〈신라 본기〉 및 열전에서 신라와 관계된 가라의 사건만 다루었다. 신가라를 금관국으로 표기하고 나머지 다섯 가라는 아무 구별도 없이 죄다 ‘가야(加耶)’로 통일한 탓에, 어떤 가라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이들을 구별해서 표기하고자 한다. 6가라의 연대가 줄어든 것 같아, 이 책에서는 가라를 신라의 앞에 두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가라 6국의 건설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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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 지식산업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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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가야(加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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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가야의 미스터리] 1부 미완의 제국, 가야의 수수께끼 / YTN 사이언스
https://youtu.be/qgyiq_v7-KI?list=PLRAmvpNm4pmkVYM9AZD9e8laWwxslWU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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