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를 찾아서
1. 신라 (1) 신라 초기 본문
지금까지 신라의 건국과 관계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후한서》 《삼국지》 등의 기록을 분석하여 신라 건국의 핵심세력과 건국 연대 및 신라 초기의 사회성격 등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얻어진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는 신라를 건국한 핵심세력은 북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로 보았으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건구 연대에 대해서도 고구려보다 앞선다는 이유 때문에 그 신빙성에 의문을 품는 학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신라 초기사회를 역사학이나 인류학이 말하는 국가사회 단계에 이르지 못한 낮은 사회단계였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들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신라를 건국한 핵심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고조선시대부터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인들로서 그 지역의 명문거족이었다.
그들은 고조선이 붕괴된 뒤 한韓의 일부인 진한辰韓의 여섯 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고조선이 붕괴하여 사회 혼란이 계속되자 자신들의 지역에서나마 이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끼고 신라를 건국했던 것이다.
신라와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보면 두 나라는 모두 고조선의 붕괴가 가져온 혼란 속에서 건국되었지만 신라는 그 지역 토착인들이 건국한 반면, 고구려는 지금의 요서 서부 난하 유역에서 이주해 온 고구려족이 지금의 요동 지역에서 건국하였다.
따라서 고구려는 신라보다 오랜 건국 준비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신라의 건국이 고구려보다 앞서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건국 연대인 서기 전 57년은 그대로 믿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서기 전 57년에 출발한 신라 사회가 처음부터 역사학이나 인류학에서 말하는 국가단계의 사회였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했던 고조선이나 고조선의 뒤를 이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던 한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 이전의 한반도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그 결과 신라 이전의 사회는 미개했을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신라 초기는 인류사회 진화과정의 초기단계에 해당했을 것으로 상정하였기 때문에 국가단계의 사회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와 만주 전지역을 통채했던 고조선은 이미 국가단계의 사회였고 한반도 남부에서 그 뒤를 이었던 한은 준엄한 법으로 통치되었던 발달된 국가사회였다.
그렇다면 그 뒤를 이어 한의 진한 지역에서 건국되었던 신라가 국가단계의 사회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출현했던 국가가 아니라 앞서 출현했던 고조선과 한 등의 국가들의 뒤를 이은 나라로서 엄격하게 말하면 신라의 건국은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출처;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240-241쪽)
지금까지 필자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골격으로 신라초기 · 마립간시대 · 왕호시대 등 세 시기로 구분하여 신라국가의 발달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초기는 신라가 건국된 서기 전 57년부터 서기 355년까지로서, 이 기간에 신라의 통치자는 혁거세 · 차차웅 · 이사금 등으로 불렸다.
이 시기는 신라가 국가의 기틀을 잡는 시기였는데, 건국의 주체세력인 여섯 부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생산을 장려하여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신라가 독립국으로 출범했음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주변 지역을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시기였다.
신라는 건국시조인 혁거세거서간 시대에 이미 도성인 금성을 쌓고 그곳에 궁실을 지어 국가의 기초를 세우고 호공을 한韓 왕에게 보내 신라가 독립국임을 알렸다.
남해차차웅은 시조묘를 건립하여 왕실의 신성성과 권위를 확립하였고, 유리이사금은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그는 여섯 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姓을 하사하여 각 부의 핵심 씨족이 지배귀족으로서의 체모를 갖추도록 하였다.
그리고 17등급을 두어 관직의 등급과 서열 체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가배라는 행사를 시작해 국민의 결합을 공고히 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토착인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의 기반과 조직을 튼튼히 하면서도 외래인까지 포용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탈해이사금과 호공의 등장은 그것을 알게 해준다. 탈해이사금은 통치자가 된 뒤 혁거세거서간의 후손들을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로 임명하여 주와 군을 다스리도록 함으로써 기존의 통치세력과 결합을 공고히 하려고 노력하였다.
파사이사금은 생산을 독려하여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하고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을 돕는 한편 국방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유리이사금 시대에 시작된 영토 확장이 이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낙동강 동쪽 지역을 거의 다 차지하였고 서쪽의 일부 지역도 차지하게 되었다.
파사이사금은 사신들을 파견하여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들을 감독하고, 일성이사금은 정사당을 설치했는데, 이는 영토 확장에 따른 통치자의 권위와 통치조직의 강화였던 것이다.
아달라이사금에 이르러서는 한반도의 중심부와 동부해안으로 통하는 도로를 확보하여 각 지역 사이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물의 교류를 촉진하였고 한강 유역에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 시기에 신라는 백제를 위협하였고, 왜열도의 맹주였던 비미호가 보낸 사신의 예방을 받기도 하였으며, 가야의 보호국으로 군림하였다.
서기 262년에 미추이사금이 통치자가 되자 박씨 · 석씨와 더불어 김씨 왕이 등장하게 되었다.
미추는 어머니가 박씨였으므로 신라 왕실과 관계가 없는 혈통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신라가 왕위 계승에 개방적이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서기 307년에는 나라 이름을 신라로 고쳤는데, 이 시기까지는 신라의 초기로서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윤내현, 한국열국사연구, 449-450쪽)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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