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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고령군이 2024년 6월 18일 대가야 궁성지 발굴과 정비사업 일환으로 추진 중인 ‘추정 대가야궁성지 I-1구역 정밀발굴조사’에서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궁성의 북벽부 토성벽 일부와 해자 등 궁성의 존재와 범위를 알려주는 방어(放語) 관련 시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고령군은 2017년 대가야읍 연조리 594-4번지에서 토성과 해자로 추정되는 시설을 발굴한 이후, 2019년 '대가야 궁성지 발굴 ․ 정비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해 대가야 궁성과 관련된 발굴조사를 수차례 진행했다. 그러나 아싑게도 통일신라시대 토축시설만 확인돼 대가야 궁성과 관련된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고령군은 2024년 3월부터 대가야읍 연조리 555-1번지 일원에 대한 ‘추정 대가야궁성지 I-1구역 정밀발굴조사’..
■ 1977년 고령 지산동 고분군 - 44호분, 45호분 발굴 1977년 11월 고령 지산동 고분 44호분과 45호분 발굴을 경북대와 계명대가 각각 맡았다.함께 답사에 나선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66·고고학)는 “44호분 옆 공터에 베니어판으로 지은 가건물을 짓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발굴을 했다”며 “1977년 겨울은 유독 추웠다”고 회고했다. 발굴한 지 39년 만에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 앞에 선 김세기 대구한의대 명예교수. 그의 등 뒤로 산 능선을 따라 대가야 고분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 산에는 고분 700여 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령=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한반도 최다(最多) 순장묘 발굴 1977년 11월 시작된 44호분과 45호분 발굴은..
6가라의 멸망 김수로 6형제가 신가라(지금의 김해), 밈라가라(지금의 고령), 안라가라(지금의 함안), 구지가라(지금의 고성), 별뫼가라(지금의 성주), 고령가라(지금의 함창)1)를 각각 통치했다는 점과, 임라·안라 두 가라가 4국 동맹에 참가해서 백제를 돕고 고구려를 막았다는 점은 제4편 열국쟁웅시대(중국과의 격전시대) 및 제7편 남방 제국의 대(對)고구려 공수동맹에서 서술했다. 신라의 지증·법흥·진흥 세 대왕은 지속적으로 6가라를 잠식했다. 그러다가 진흥 때 6국이 모두 신라의 소유가 됐다. 이로써 지금의 경상 좌우도가 완전히 하나가 됐다. 이제 6가라 흥망의 역사를 약술하고자 한다. 신가라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서 금관국으로 표기된 나라다. 시조인 수로 때는 신라보다 강성했다. 신라 파..
가라 6국의 건설 지금의 경상남도 일원에 변진(弁辰)의 열두 자치국이 세워졌다는 점은 제3편 제4장 삼조선 분립 이후의 말조선에서 설명했다. 이들 자치국은 흔히 가라로 불렸다. 가라는 ‘큰 못’이란 뜻이다. 자치국들이 둑으로 물을 막고 큰 연못을 만든 뒤 그 부근에 자치부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가라는 이두로 가라(加羅)·가락(駕洛)·가야(加耶)·구야(狗耶)·가야(伽倻) 등으로 표기됐다. 야(耶)·야(邪)·야(倻) 등은 고어에서 ‘라’라 발음됐다. 가라는 관국(官國)으로도 표기됐는데, ‘관’에서 초성 ‘ㄱ’과 더불어 중성 ‘ㅘ’의 ‘ㅏ’을 떼어 ‘가’로 읽고, ‘국’의 뜻인 ‘나라’에서 한쪽을 떼어내어 ‘라’로 읽은 것이다. 서기 42년 무렵에, 아홉 가라의 지도자인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