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라 력사를 찾아서
고구려(10) - 고구려 문화유산(7) 고구려 세계문화유산(7) 태왕릉 본문
이형구교수는 기원 3, 4세기 고구려 중기에 오면 돌무지무덤에 3단·5단·7단식으로 층 수가 증가하면서 마치 계단식 피라미드형의 돌무덤으로 축조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장군총(將軍塚)과 태왕릉(太王陵)이라고 합니다.
『고구려 전기에 유행했던 돌무지무덤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 있는 발해연안의 신석기 내지 청동기시대에 동이족이 축조한 돌무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대릉하 유역 건평현 우하량 유적의 홍산문화시기[기원전 3500년경]의 계단형(階段形) 돌무지무덤은 피라미드(Pyramid)형 돌무덤의 대표적인 원형이다.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선대의 돌무덤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 돌무지무덤인데, 돌각담 무덤이라고도 하고 적석총이라고도 하는 바 고구려 전기 수도였던 만주 집안 지방에는 무려 1만 기 이상의 고구려 고분이 있다.
최근 정비된 광개토대왕릉비[왼쪽]와 태왕릉[오른쪽]태왕릉과 광개토대왕릉비와는 불과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기원 3, 4세기 고구려 중기에 오면 돌무지무덤에 3단·5단·7단식으로 층 수가 증가하면서 마치 계단식 피라미드형의 돌무덤으로 축조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장군총(將軍塚)과 태왕릉(太王陵)이다. 이 무덤에 대해 한국·중국·일본 등 세 나라 학계에서는 서로 “장군총이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이다”, “태왕릉이 광개토대왕릉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태왕릉에서 발굴된 청동방울최근에 ‘호태왕(好太王)’ 명문이 새겨진 청동방울이 호태왕릉 기단부에서 출토되어 광개토대왕릉임이 밝혀졌다. 높이 6cm, 너비 3.5cm.
집안박물관이 2003년 5월부터 11월까지 태왕릉(太王陵)을 발굴조사한 결과, 정상부까지 모두 9층 계단식 피라미드로 축조되었고, 9층 묘실의 정상부의 크기는 사방 12m로, 그 위에 향당(享堂)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04년 1월 13일 집안박물관 연구원 손인걸(孫仁杰) 씨의 말]. 한편, 태왕릉 발굴시 ‘辛卯年 好太王 九十六 □ 造鈴’명의 청동방울[청동령(靑銅鈴)]이 출토되어 이 릉이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동이족의 고대 왕국인 은나라의 수도였던 중국 하남성 안양시 은허에서 1975년에 발굴된 무정(武丁, 기원전 1300년 전후)왕의 왕비인 부호묘(婦好墓) 위에서 향당의 건축 유구가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은나라 왕족인 기자(箕子)의 둘째 아들이 세웠다고 하는, 지금의 하북성 중남부에 위치했던 선우중산국(鮮虞中山國)의 중산왕릉(中山王陵, 기원전 4세기 말 영조)에서도 향당 건축 시의도 유구가 발견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청나라 때[건륭(乾隆) 31년, 1766]의 『곡부현지(曲阜縣志)』에 동이족의 시조라고 하는 소호 김천씨(少昊金天氏)의 ‘소호능(少昊陵)’ 삽도가 실려 있는데, 피라미드형 능묘 위에 향당 건축이 묘사되어 있다.
『곡부현지(曲阜縣志)』 [1766] 소재 소호릉(少昊陵) 삽도
저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1993년 6월,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현지를 답사하였다. 놀랍게도 백색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밑변 28.5m, 윗변 11m, 높이 13m의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상에 4면 1칸의 와옥(瓦屋)으로 된 향당이 건축되어 있었다. 지금의 능묘는 송나라 진종(眞宗) 때 크게 수리했다고 한다.[1012년] 향당 안에는 신상(神像)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신상이 바로 소호 김천씨 상으로, 『삼국사기』 제43 김유신전에서 “신라 사람들이 스스로 소호 김천씨의 후손이라고 일컬었다. ······ 수로는 신라와 같은 성이다[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首露與新羅同姓也]”고 한 바로 그 소호 김천(少昊 金天) 씨다.
소호릉 정상 향당 안의 소호상(少昊像)1993년 6월 곡부(孔府)를 방문하는 길에 문헌으로만 알고있던 소호릉을 탐방하였다.
중국 산동성 곡부시(曲阜市) 소호릉백색대리석으로 된 피라미드 위에 단칸 향당(享堂) 건물이 있다.
이와 같은 피라미드형의 능묘가 고구려와 같은 뿌리인 백제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백제의 피라미드형 석축고분인 서울 송파구 석촌동(石村洞) 제3호 적석고분은 석축이 많이 무너져내려 높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면의 길이는 약 50m로 확인되었다. 남쪽 면은 도로에 잘려나갔으나 1980년대 후반 지하차로가 생기면서 원 상태로 복원되었다. 이 규모는 고구려 장군총[한 면 길이 31.58m]보다는 크고 태왕릉[한 면 길이 66m]보다는 작은 편이다.
석촌동 3호분 바로 앞에 있는 제4호 적석고분은 한 면의 길이가 17m이고 높이가 약 3m 정도의 크기로 3단으로 복원되었다. 이 고분의 동쪽 면에서는 5개[혹 6개]의 호석(護石)이 발견되었는데, 고구려 장군총[각 면에 3개]이나 태왕릉[각 면에 5~6개]의 기본 구조와 같아 매우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석촌동 제4호 고분에서는 여러 점의 기와와 벽돌이 발굴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건축재료가 고구려 장군총이나 태왕릉의 향당 건축물과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최근 정비된 태왕릉의 서쪽 묘실 입구길림성 집안시 국내성 동쪽에 위치한 고구려시대의 왕릉으로 밑변이 66m, 높이 15m나 되는 대형 피라미드이다.
태왕릉 발굴 시의도(太王陵發掘示意圖)[손인걸(孫仁杰) 도회(圖繪) 2004. 1.]
우리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 정사에는 백제의 선조가 고구려에서 내려왔다고 하고 백제의 남자[민족]·언어·복장·음식 등 제반 풍속이 고구려와 동일하다고 했다. 고대 민족의 가장 중요한 종교행사인 장례[묘제]가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은 민족의 동일성과 문화의 동질성을 말해주는 것이다.』(1)
중국 학자들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결같이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내 학자들은 장군총을 광개토왕릉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서기 412년 39세로 서거해 장수왕 3년(414) 산릉에 묻힌 광개토왕의 무덤은 어디일까.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학자들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위치한 광개토왕비 주변의 태왕릉과 장군총을 놓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 학자들은 2004년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한결같이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내 학자들은 장군총을 광개토왕릉으로 보고 있다.
광개토왕비와의 거리로 따지면 태왕릉이 400여m, 장군총은 1.7㎞ 정도 떨어져 있다. 고분군이 밀집한 국내성 동쪽 용산(龍山)과 우산(禹山) 아래에 형성된 무덤으로, 거리상으로 따지면 태왕릉이 광개토왕릉일 가능성이 높다. 크기도 태왕릉이 장군총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방위적인 면에서 볼 때는 광개토왕비가 장군총 묘실 전면에 위치하고 있어 능의 전면에 비가 위치해야 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
태왕릉은 무덤 주변에서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바라건대 태왕릉이 뫼처럼 안정되고 높은 산처럼 굳건하기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실시된 조사에서 제대(祭臺) 시설이 확인되고 '신묘년 호대(태)왕 □조령 구십육(辛卯年 好大王 □造鈴 九十六)'이란 글씨가 새겨진 청동방울이 출토됐다. 제대 시설의 성격이나 호태왕이 반드시 광개토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등 반론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으로 보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학자 가운데 태왕릉을 광개토왕으로 비정해온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지난 18∼19일 열린 광개토왕 1600주기 국제학술회의에서 광개토왕비 앞을 흐르는 소하천을 동천(東川)으로 비정한 뒤 태왕릉과 광개토왕비가 동일 공간에 위치한 것에 비해 장군총은 광개토왕비와 동천으로 비정되는 하천에 의해 별개의 공간으로 구획돼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 했다. 』(2)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에 있는 태왕릉 전경. 일반적으로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학계에서는 광개토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1.21.© 뉴스1
출처; [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⑥ 평양지역의 고구려왕릉
공석구교수는 학술지 ‘고구려발해연구’ 최근호에 실은 논문 ‘연꽃무늬 와당으로 본 광개토왕릉 비정’에서 “여러 와당과 명문(銘文) 기와 등의 유물을 종합해 보면 광개토대왕이 태왕릉에 묻혔다고 보기 어렵다”며 “광개토대왕릉은 장군총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출토된 와당(瓦當·지붕 기와 끝을 막는 막새기와)을 근거로 광개토대왕이 묻힌 왕릉이 태왕릉이 아니라 장군총일 가능성을 뒷받침한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2017년 촬영한 중국 지안시 장군총. 공석구 한밭대 교수는 출토된 와당을 분석해 장군총에 묻힌 이가 장수왕이 아닌 아버지 광개토대왕일 것이라고 논문에서 주장했다. 동아일보DB
고구려 국내성이 있던 중국 지안(集安)시에는 고구려 왕릉이 산재해 있다. 대중적으로는 광개토왕릉은 태왕릉, 장수왕릉은 장군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중국 학계는 광개토왕릉은 태왕릉이라고 보는 편이지만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태왕릉설과 장군총설이 경쟁하고 있다.
공 교수는 중국 측이 출간한 발굴보고서를 통해 출토 유물을 비교 분석했다. 그는 먼저 지안시에 있는 또 다른 고구려 고분인 천추총을 광개토대왕이 개·보수했다고 봤다. 천추총에서 광개토대왕의 생전 연호 ‘永樂(영락)’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됐기 때문이다. 또 천추총에서 함께 출토된 이파리 6개짜리 연꽃무늬 와당의 제작 시기 역시 광개토대왕 때라고 봤다. 광개토대왕이 천추총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영락’ 명문 기와와 이 와당을 함께 제작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공 교수는 이 기와에 등장하는 ‘未(미)’자를 간지로 보아 제작 시점은 광개토대왕 재위 17년인 407년(정미년)이라고 봤다.
왼쪽은 태왕릉, 오른쪽은 장군총에서 출토된 이파리 8개짜리 연꽃무늬 와당의 그림이다. 공석구 교수 제공
그럼 광개토대왕은 어디에 묻혔을까. 이 역시 또 다른 와당에 힌트가 있다. 태왕릉과 장군총에서는 모두 이파리 8개짜리 연꽃무늬 와당이 출토됐다. 이 역시 서로 모양이 거의 같아 같은 시기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공 교수는 “장수왕이 아버지의 무덤인 장군총을 축조하면서 이 와당을 썼고, 할아버지의 무덤인 태왕릉 역시 이 와당으로 함께 개·보수했던 것”이라며 “결국 장군총의 주인공은 광개토대왕”이라고 밝혔다.
장군총에서 연꽃무늬 와당이 한 종류만 출토된 것 역시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장군총은 축조된 이후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공 교수는 장수왕이 427년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왕실이 직접 제사를 받들기 어려워진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3)
<주>
(1) [네이버 지식백과] 고구려 피라미드의 웅자(雄姿)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
(2) <서거 1600주년 기념-다시보는 광개토대왕>광개토왕릉은 어디? 中학계 "태왕릉" 국내선 "장군총" (daum.net)2012. 10. 25.
(3) "광개토대왕 묻힌 곳은 태왕릉 아닌 장군총" (daum.net)2019. 8. 21.
<참고자료>
태왕릉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⑥ 평양지역의 고구려왕릉 2020. 11. 21
광개토대왕·장수왕 그 왕명을 받들지 못하니..애잔하여라 고구려의 후손이여 202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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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14) 장군총과 태왕릉 2009. 9. 15
광개토왕비는 신도비, 태왕릉은 고국양왕릉 (daum.net)2005. 8. 2.
박진호씨, 고구려 태왕릉 3D 복원 (daum.net)2003.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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