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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개성 만월대는 약 1100년 전 세워진 고려태조 왕건의 궁궐터입니다. 이형구교수는 회경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있고, 그 북쪽에 궁전의 중심 건물인 회경전이 한 단 높은 지대석 위에 웅장하게 솟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회경전 뒤에는 장화전·원덕전·건덕전·중광전·선정전 등 여러 궁전 건물의 초석이 연달아 자리 잡고 있으며, 궁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수많은 건물들 가운데서 회경전이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려 통일의 터전 - 만월대 개성 남대문을 끼고 시내를 지나 만월대(滿月臺)로 향하였다. 영통사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개성을 방문하게 되었지만 특별히 만월대 방문을 요청한 뜻은 고려 통일 왕조를 500년 동안 지켜온 왕궁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개성 남대문개성..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혜초 스님(704~787)이 후기신라(통일신라) 때 723년부터 727년까지 다섯 천축국 곧 인도의 다섯 나라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 모두 44개 지역을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은 13세기 후반에 쓰여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초반의 오도릭의 《동유기》, 14세기 중반에 쓰여진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인데요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1908년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Paul Pelliot, 1878~1945)가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위안루(왕원록)에게서 구매한 7,000점의 유물 중에 섞여 있었으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한 권의 두루마리로 ..
1966년 10월 13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다가 발견한 불교 경전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입니다. 석가탑 제2층 탑신부에 봉안되어 있던 금동제 사리외함(舍利外函)에서 다른 여러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하 무구정경)과 묵서지편이 나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복제품), 출처; 위키백과 무구정경 본문 중에 당 측천무후가 집권했을 때에만 사용되었던 무주제자가 발견되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이 중수되기 이전에 인쇄되었다고 인정되었습니다. 704년에 다라니경이 산스크리트어에서 한문으로 번역되었고, 불국사가 세워진 것은 751년이기 때문에, 그 두 시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런데 1966년 무구정경과 함께 발견된 묵서지..
고려(918~1392)가 10세기 무렵 당시 최첨단 제품인 '자기' 제작에 성공한 것은 생활 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 혁신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고려인은 불과 150여년 만에 자기 제작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습니다. 미술사학자 고유섭(1905~1944)은 그의 저서 '고려청자'(1939)에서 '화려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하고 고요한 맛이 있다'고 고려청자를 평하기도 했습니다. '비색'(翡色) 청자는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을 띤 절정기의 고려청자를 말한다.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이 1123년 고려를 방문한 후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당시 고려인이 청자 종주국인 송나라 청자의 '비색'(祕色)과 구별해 고려청자의 색..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이후 뒤처진 5가지 이유…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이기환역사 스토리텔러입력 : 2020.05.05 06:00 수정 : 2020.05.07 09:59‘갑인자’를 개발한지(1434년) 2년만에 간행한 . 구텐베르크는 그보다도 18년 늦은 1454년 구텐베르크 성서 180부를 발행했다.‘구텐베르크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필자는 얼마전 (1377년 간행)보다 138년 빠른(1239년) 금속활자본(보물 제758-2호 공인박물관 소장 )이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구텐베르크가 이룬 것 같은 혁명은 없었다’는 독자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는 뼈아픈 지적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중고고학이 발전하면서 ‘보물선’으로 불리는 고선박 등 다양한 수중문화재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지금까지 바다에서 발굴한 고선박은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모두 14척이다. 사진은 경기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해수욕장 인근에서 고려시대 선박 ‘대부도2호선’이 발굴되는 장면(2015년)이며, 선체에서 청자 등 유물과 함께 곶감이 발견되기도 했다. 입력 : 2023.06.20 05:00 수정 : 2023.06.20 20:30 12~13세기 고려시대 선박인 대부도2호선 발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곶감꾸러미. 감씨와 붉은 색의 과육이 800년전의 모습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나뭇가지 뭉치와 함께 나뭇가지를 묶은 것으로 보이는 초본류가 확인됐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이거, ..
‘해인사 팔만대장경’, 내년부터 웹 서비스된다도재기 기자2024. 3. 18. 15:17문화재청, 디지털 DB 구축사업 추진…“누구나 쉽게 열람·활용”‘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세계기록유산)이 디지털 자료화돼 열람과 활용이 쉬워진다. 사진은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대장경판들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흔히 ‘팔만대장경’으로 부르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이 디지털 자료로 구축돼 내년부터는 언제 어디서 누구나 열람할 수있는 웹서비스가 이뤄진다.문화재청은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활용 가능한 웹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팔만대장경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팔만대장..
"슬프다, 섬 오랑캐가 팔도를 삼켰다" 고종은 글로 울었다2024. 8. 17. 00:30━[근현대사 특강] 기록에 남은 구한말 군주의 절규지도자, 그것도 국가 원수면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심성 도야를 앞세운 유교 왕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필자는 고종 시대를 공부하면서 군주 고종의 절규와 통곡을 세 번 만났다.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참지 못한 통곡들이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주한 고종과 세자가 상복을 입고 공사관 앞에 나와 있다. 공사 베베르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첫째는 갑신정변 때 일이다. 『고종실록』은 이 사건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1) 1884년(고종 21) 10월 17일(음력) 밤 우정국 낙성식 연회에서 우영사(右營使) 민영익이 흉도들이 휘두른 ..
애민정신의 끝판왕 세종의 '천기누설'.."공중해시계를 종로에 내걸라"이기환 선임기자2020. 11. 17. 09:00[경향신문]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6월 미국의 한 경매에서 출품된 조선의 공중시계인 앙부일구를 구입환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때를 아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밤에는 자격루가 있지만 낮에는 알기 어려워…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해에 비쳐 각(刻)과 분(分)이 환하고 뚜렷하게 보이고,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1434년(세종 16년) 10월2일 기록이다. 세종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또하나의 발명품을 선보였다는 내용이다. 즉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시내 혜정교(종로 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와 종묘 앞에 설치했다..
[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 90] 조선 개국의 상징 '천상열차분야지도'글 한국지도학회 최선웅 부회장2020. 1. 14. 10:10 선조 때 제작한 목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1392년 7월 17일 이성계李成桂는 개경의 수창궁壽昌宮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禪位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조선을 개국했다. 이때 태조는 조선의 개국이 천명天命에 의한 것임을 만천하에 밝히기 위해 천문도를 만들려는 뜻이 있었다. 이때 옛날 평양성에 있었던 천문도 인본을 바치는 자가 있어 이를 귀히 여겨 서운관書雲觀으로 하여금 이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돌에 새길 것을 명했다.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한 권근權近을 중심으로 유방택柳方澤·설경수偰慶壽 등 천문학자와 전문가 11명이 1395년(태조 4)에 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