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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경주 월성유적은 둘레 2340m, 면적 20만㎡이고 101년 축조해 935년 통일신라가 무너질 때까지 800여년 동안 왕들이 머물던 곳입니다. 1915년 처음으로 성벽 일부가 발굴된 이후,2014년 12월12일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단이 발굴을 시작하여 안팎에서 학술적 의미가 큰 명문 있는 목간·기와·토기부터 배·방패·그릇·국자·빗 등 목제품, 토우, 금동 장식물, 철제물, 육지와 바다동물 뼈까지 3~10세기 유물 10만여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성벽은 석회와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성질이 다른 흙을 번갈아 쌓아 견고하게 만들었는데요, 서쪽 성벽에서 발견된 남녀 인골 2구는 ‘인주 설화’를 보여주는 첫 사례입니다. 반달 모양을 닮아 반월성으로도 불린 월성 전경. 신라 건국 후 첫 궁..
■ 익산 왕궁리유적 2012년 11월 26일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이상준)는 사적 제408호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북쪽의 후원(後苑) 공간으로, 보도(步道)시설이 잘 남은 북동쪽 성벽과 후원의 중심부를 경계 짓는 환수구(環水溝), 추정 원지(苑池), 곡수로(曲水路) 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武王:600~641) 시기에 조성된 왕궁성(王宮城)으로 지난 1989년부터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하나로 연차 발굴이 이뤄졌으며 이번 조사지역은 2009년부터 발굴하고 있는 유적 북쪽의 후원(後苑) 공간이다. 【대전=뉴시스】박희송 기자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연못으로 추정되는 원지(苑池)와 수로 등이 발견됐다.(출처; https://v.da..
공산성의 백제 왕궁 부속시설 발굴조사는 2008년부터 매년 진행됐다. 공주대학교박물관 발굴단은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공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60여동 이상 집중된 백제 시대 건물지를 확인했다. 공산성 내 왕궁관련시설의 확인은 물론이고 백제 왕성의 도시구조와 사회상을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성안마을이 있던 북서쪽 대지 1만 2000㎡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백제 시대 건물지 31동과 연못, 나무 사다리 등이 출토됐다. 특히 완전한 형태의 백제 시대 사다리는 이번이 최초 발견이다. 【서울=뉴시스】공산성 발굴지【서울=뉴시스】대형 건물지【서울=뉴시스】육각형 건물지【서울=뉴시스】사다리【서울=뉴시스】산 모양 무늬 기와편 발굴지는 동남향의 완만한 구릉 사면부로..
■ 창녕 송현동 고분군 15호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2007년 12월 22일 개최한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은 올해 조사된 유적 중에서도 대형급 무덤에 속하는 15호분 구조가 횡구식(橫口式) 석실분(石室墳)인지, 아니면 수혈식(竪穴式) 석실분인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습니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군 제15호 석실분 내부(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 벽에 순장자와 각종 부장품을 넣었다. 이 석실은 맞배지붕 모양을 본떴다. 창녕/연합뉴스 석실분이란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을 돌로 쌓아 만든 무덤을 말한다. 석실 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런 석실분을 ..
경주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경주역사유적지구(Gyeongju Historic Areas)는 신라천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교토, 나라의 역사유적과 비교하여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된다." 경주역사유적지구는 5개 지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2000년 12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에 다녀왔습니다. 창덕궁 전경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순종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후원은 1406년(태종 6) 창덕궁 북쪽에 처음 조성되었고 1463..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시기와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 지역이 세계적인 분포권에서 가장 밀집된 곳으로 그 중 우리나라가 그 중심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 화순 · 강화고인돌유적(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은 밀집분포도, 형식의 다양성으로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유럽, 중국, 일본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1)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와 ‘고창 죽림리..
이형구교수는 기원 3, 4세기 고구려 중기에 오면 돌무지무덤에 3단·5단·7단식으로 층 수가 증가하면서 마치 계단식 피라미드형의 돌무덤으로 축조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장군총(將軍塚)과 태왕릉(太王陵)이라고 합니다. 『고구려 전기에 유행했던 돌무지무덤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 있는 발해연안의 신석기 내지 청동기시대에 동이족이 축조한 돌무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대릉하 유역 건평현 우하량 유적의 홍산문화시기[기원전 3500년경]의 계단형(階段形) 돌무지무덤은 피라미드(Pyramid)형 돌무덤의 대표적인 원형이다.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고구려가 선대의 돌무덤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 돌무지무덤인데, 돌각담 무덤이라고도 하고 적석총이라고도 하는 바 고구려 전기 수도였던 만주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