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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김정일 정권김정일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과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1994년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한다고 했을 때 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미군과 맞설 수 있는 전쟁수행능력이 없고 비축물자..
홍원탁 [홍원탁의 동아시아역사 바로보기]당의 멸망과 서 만주 왕조의 복귀2005년 08월 01일 757년에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을 진압 해준 위구르는 당나라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동맹국이 되었다. 하지만 위구르 제국이 840년에 키르기스 돌궐족에게 멸망 당하자, 당나라는 보호자를 잃고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하다가 다시 한번 반란이 일어나자 그대로 와해되었다. 924년에 키르기스 돌궐족을 예니세이 초원지대로 쫓아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서 만주의 거란족이었다.926년에 요(遼)에 의한 발해의 멸망은, 만주 역사에서 한국을 제외시켜버린 전환점이 된 것이다. 요사(遼史)가, 거란족의 요는 선비족의 후예로, 고조선의 옛 땅에서 나왔으며, (고조선 모양) 기자 팔조(箕子八條) 가르침의 유풍(流風)과 유..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19)상나라와 한민족(上)입력 : 2008.02.15 17:15이기환 선임기자상나라 귀족묘 출토 인골…한족 아닌 백의민족 모습“(시조인) 설 현왕이 아들 소명(설로부터 2대)을 낳고 지석(砥石)에 거주했다.”(순자·성상편)중국 문헌은 동이족인 상족(商族)이 중원으로 내려와 하나라를 멸할 때까지의 역사와 활동무대, 즉 시조 설부터 성탕의 상나라 건국(BC1600년)까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던져놓았다. 중국 학계는 이 문헌기록을 토대로 다각적인 분석에 들어간다.안양 인쉬에서 발굴한 상(은)나라 무덤. 노예로 추정되는 대량의 인골이 나란히 묻혀 있다. 순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여의 습속과 같다. 옌산에서 백두산·헤이룽강까지처음에 인용한 ‘순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김정일 정권김정일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과 유엔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1994년 영변 핵 시설을 폭격한다고 했을 때 전쟁 위기가 최고조였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은 미군과 맞설 수 있는 전쟁수행능력이 없고 비축물자..
1919년 1월 21일 새벽 고종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자기 승하하셨습니다. 당시 68세였던 고종은 평소 지병이 없고 건강했기 때문에 일제에 의한 독살설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소문들이 퍼져나갔습니다. 1919년 1월 21일 새벽 1시, 경술국치 이후 이왕(李王)으로 강등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거처하던 창덕궁에 전화벨이 가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든 순종은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부왕(父王)이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황급히 덕수궁으로 달려간 순종이 함녕전에 들어섰을 때 이미 고종은 흰 천을 쓰고 누워 있었다. 향년 68세, 1863년부터 1907년까지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였던 고종은 망국(亡國) 9년 뒤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전국으로 번진 '고종..
2015.08.05 09:49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코드를 찾아서(1)- 전원철 박사 인터뷰 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 가계의 비밀 (economychosun.com) 이상흔 조선pub 기자 130호 6월호에는 북방민족사학자 주몽예씨의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 왕가(王家)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다소 \'도발적인\' 기고문이 한편 실렸다. 주몽예씨는 칭기스 칸 연구를 위해 29개국 언어로 된 사서를 읽고 이를 전부 비교대조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였다고 한다. 그의 기고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주몽예씨의 본명은 최근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1. 2권》을 펴낸 전원철 박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은 그가 칭기스 칸 연구에 뛰어든 계기와 기고문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직접..
민성욱 말갈과 한민족 국가 간의 관계K스피릿 입력 2021.07.07 09:02 기자명민성욱 박사 [칼럼] 민성욱 박사 말갈은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국가 또는 집단과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만주지역에서 비롯되었던 한민족의 여러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기록상으로 『삼국사기』 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갈 관련 기록과 중국 정사 중 「동이열전」에 등장하는 말갈계 종족들의 기록들, 『수서』이후에 등장하는 말갈은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에는 「동이열전」에서 시작해서 「북적열전」으로 이어지는 관련 기록이 많아 남아 있다. 일본사서에는 『속일본기』,『유취국사』 등에 말갈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말갈은 스스로 역사기..
[7월4일!] "북괴 아니고 북한"… 北 호칭 바꾼 최초의 공동성명서지영 기자2024. 7. 4. 07:16 [역사 속 오늘] 7·4 남북 공동 성명 1972년 7월4일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일성이 마주 보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캡처 1972년 7월4일 역사적인 공동 성명이 발표됐다.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남·북한이 뜻을 모아 발표한 최초 성명이었으며 성명서에는 통일의 3대 원칙인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 담겼다. 분단 이래 남북은 서로를 '괴뢰 집단'으로 여기며 오직 무력을 통해서만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명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한국 한자: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영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또는 조선은 동아시아의 한반도 군사 분계선 북부에 위치한 나라이다.[3]UN이 추정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2024년 기준으로 약 2,561만 명이며[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용어는 조선말이며, 평양말을 기초로 문화어가 형성되었다.수도는 평양시이며, 이밖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도시로는 남포시, 개성시, 라선시 등이 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 형태는 정당이 조선로동당이 있으며 사실상 일당제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 최고지도자 김일성은 6.25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