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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쌍영총은 통로에 2개의 커다란 8각기둥이 세워져 있어 붙인 이름입니다. 쌍기둥무덤이 되겠습니다. 벽화의 종류로는널길 동벽의 우차도 · 개마무사도 · 여인행렬도,서벽의 기마인물상도,앞방 입구 통로 동벽의 험상궂은 얼굴의 역사,널방 동벽의 남녀행렬도,현실 북벽에 있는 묘주인부부의 초상 · 남녀시종 · 쌍현무 등이 있습니다. 5세기 말엽을 전후하여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 벽화고분을 대표하는 고분 중 하나인 쌍영총의 앞방 전경. 8각 돌기둥과 앞방 벽, 그리고 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출처; 연합뉴스, 쌍영총 앞방 전경 (daum.net)2006. 8. 29. 『고구려 쌍영총 벽화, 눈으로 직접 본다 ‘빛의 과학’전에 처음 공개된 쌍영총 널길 동벽 벽화편의 주요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인 고구려..
임기환교수는 덕흥리고분에 담겨 있는 벽화 제재의 풍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림의 대상과 내용에 대해 그 이름과 설명이 묵서로 밝혀져 있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며, 벽화와 묵서 등 이 무덤에 담겨 있는 역사 자료의 가치로 보아 덕흥리고분을 현존하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첫 자리로 꼽았습니다. [고구려사 명장면-26] 고구려 역사의 노다지, 덕흥리고분『1976년 12월 8일,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옛 지명: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 무학산 서편 옥녀봉의 남쪽 자락. 향금산이라고 불리는 구릉에서 관개수로 공사 중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 1기가 발견되었다. 한겨울임에도 발굴단은 부랴부랴 12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20일까지 한 달여 동안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 성과는 놀라웠다.무덤은 널길,..
임기환교수는 각저총(씨름무덤)의 축조 시기는 5세기 초반 혹은 중반으로 추정하고, 광개토대왕 · 장수왕 때로 고구려인들의 활달한 기운이 넘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그림은 역시 씨름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저총의 씨름그림 한 장면에는 고구려가 고조선 이래의 문화 전통 위에서 개방적인 태도를 갖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전통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갖춘 문화를 향유하였던 모습이 담겨 있으며, 바로 이런 점이 오늘 우리가 고구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이라고 보았습니다. 임기환교수 [고구려사 명장면-33] 각저총 씨름도가 말하는 고구려의 전통과 개방성 『무용총과 마치 쌍둥이 무덤처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벽화고분이 각저총(씨름무덤)이다. 각저총의 축조시기는 5세기 초반 혹은 중반으로 추정되..
무용총(舞踊塚)은 길림성(지린성) 통구에 있는 고구려 고분입니다. 고분 내부 오른쪽 벽에는 수렵도가 그려져 있고, 왼쪽 벽에는 검은색 말을 탄 사람과 무용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그림이 있습니다. 무용총의 남쪽에는 각저총이 있고, 무용총의 서남쪽에는 산연화총, 삼실총, 통구사신총, 오희분 등의 우산하고분군이 있습니다. 입구에서 마주보이는 현실 주벽에는 주벽벽화접객도가 있고,현실 서쪽 벽에 수렵도가 있고, 수렵도와 함께 현실 서쪽 벽에 우차도(牛車圖)가 있으며, 현실 동측 벽에 무용도가 있습니다.(1) 임기환교수는 두방무덤인 무용총은 널방 벽면의 가무배송도, 수렵도, 묘주접객도가 유명하며, 그외 천장에 있는 하늘세계를 꾸미는 다양한 벽화도 눈길을 사로잡는데, 무용총이란 이름은 벽화 중에 무..
오강원교수는 시차거우(서차구) 고분군의 핵심 유물 가운데 하나인 동병철검, 황금제 귀고리, 토기는 한나라는 물론 북방문화권의 다른 지역·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물군이고, 이 세 유물 요소가 모두 확인되는 것이 바로 지린시를 중심으로 제2쑹화강 유역 등지에 형성되어 있던 부여문화(포자연문화)라고 합니다. 『1955년 이른 봄날 랴오닝성 시펑(西豊)현 러산(樂善)향 즈중(執中)촌 장자제(姜家街)에 사는 몇 사람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마을 뒷산에 올랐다. 이제 갓 겨울철이 지났고 아직 곡식을 심지도 않은 상태라 집집마다 식량이 충분치 않던 차에, 10여년 전 마을 노인들이 뒷산에서 구덩이를 파다가 우연히 황금과 옥기를 파내어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올라간 마을 사람 가운데 한 ..
이형구교수는 1980년 초 길림시 동쪽 교외 송화강 유역의 용담산(龍潭山) 줄기의 동단산성(東團山城)에서 동남쪽으로 연이어 펼쳐진 속칭 남성자(南城子)라는 곳에서 원형의 토성(土城)이 발견되었는데, ‘전기 부여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여 전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요녕성 서풍현(西豊縣) 서차구(西岔溝) 유적을 들 수 있고, 송화강 유역의 용담산·동단산(東團山)·서단산(西團山)·모아산(帽兒山)·포대산(炮臺山) 등지에서 전기 부여 시기의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부여 중기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길림성 유수현 노하심(老河深) 유적이 있습니다. 서차구 유적과 노하심 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금 귀고리가 출토되었습니다. 부여문화의 귀고리는 고리 모양의 귀고리, 걸개와 드리개 장식으로 된 귀고리..
1979년 향토연구모임인 '예성동호회'가 발견한 '충주고구려비'와 1997년에 발국한 고구려 아차산 보루를 알아봅니다. 1979년 2월 24일 향토연구모임인 예성동호회원들은 충북 중원군(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우뚝 서있던 비석에서 예사롭지 않은 명문을 읽어냅니다. 40여 일 뒤 ‘충주 고구려비’로 명명된 ‘국보 중 국보’ 명문비석을 발견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고구려비석의 역사적인 발견 순간이었습니다. 조사단을 이끈 정영호 단국대박물관장은 “이 비는 장수왕의 남진정책을 기념하기 위해 고구려의 국원성이었던 충주에 세운 고구려의 비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광개토대왕 재위 시절까지’ 소급해볼 수도 있겠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주고구려비는 한반도에서..
1946년 5월14일이었다. ‘#을묘년 국강상 광개토지호태왕 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우十)’. 경주 노서리 140호분(돌무지덧널무덤)을 파고 있던 국립박물관 조사단이 ‘발굴 일지’의 표현대로 ‘쎈세이순’한 명문 유물을 찾아냈다. 고급의 청동제 그릇 밑바닥에 아로새겨진 ‘광개토대왕(재위 391~412)’, 그 분의 묘호가 빛났다. 해방 후 첫번째 ’우리 손 발굴’에서 이뤄낸 개가였다. 당시 신문(동아일보 5월25일)의 보도처럼 명문 유물의 착안점은 두가지였다.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그릇에서 보이는 #(井) 부호(글자). 광개토대왕 사후 3년 후인 415년 제작된 청동그릇 밑바닥의 16자 글자 위에 수수쎄끼를 내듯 새겨져 있다. 이 #(井)자는 호우총보다 50~100년 전 조성된 국내성의 ..
국립경주박물관이 2018년 9월 6일 오후 4시 경주 대릉원 일원의 금령총에서 발굴조사를 위한 개토제를 개최했다.국립경주박물관에 따르면 특이한 금제방울이 출토돼 이름이 붙여진 금령총의 이번 발굴조사는 조선총독부박물관 수집 자료 정리 사업의 일환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신라 대형고분의 미진한 조사 내용을 보완하고, 전체 유적 현황을 파악해 기존에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추가 발굴 및 일제강점기 보고 자료를 포함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대릉원 일원의 금령총. 2018.09.05.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금령총은 인접한 식리총과 함께 1924년에 조사됐다. 당시 금관(보물 제338호), 금제허리띠,..
신라 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경주 대릉원 일원에서 잘 알려진 무덤 중 하나가 바로 천마총(天馬塚)입니다.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경험을 쌓고자 시작한 조사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를 비롯해 금관, 금 허리띠 등 1만1천5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습니다. 경주 천마총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달 23일 찾은 경주 천마총 입구 모습. 2023.4.3 yes@yna.co.kr "오늘은 날씨도 청명했지만, 아침부터 현장은 다시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1974년 발행된 '천마총 발굴 조사 보고서' 중)경북 경주시 '황남동 155호 고분'의 발굴 일지는 1973년 8월 22일을 이렇게 전한다. 발굴 조사 전 천마총의 모습 사진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