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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를 찾아서
동학농민혁명 단체 “명칭·정신, 헌법 전문 수록해야”김창효 기자2023. 10. 29. 11:17 정읍시·전국 39개 동학농민혁명단체, 국회서 성명 발표전북 정읍시와 전국 동학농민혁명 39개 단체 관계자들이 26일 국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 헌법전문 포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읍시 제공 전북 정읍시와 전국 39개 동학농민혁명 단체가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지난 26일 국회에 모인 이들은 “동학농민혁명은 3·1운동의 뿌리이자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의 진정한 출발로 삼아야 한다”면서 “정부와 국회는 동학농민혁명 명칭·정신 헌법전문 명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29일 동학농민혁명 단체에 따르면 공동성명을 낭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박석무의 실학산책] 성호 이익의 간쟁론2022. 11. 3. 00:39박석무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 고전을 읽으면 현재도 보이고 미래도 예측할 수가 있다. 현재나 미래와 무관한 옛날의 책을 모두 고전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상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풀리지 않는 일로 나라와 백성에 대한 근심을 떨칠 수 없을 때에는, 고전을 읽어서 옛날·현재·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그래서 요즘 나는 고전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까맣게 잊어버린 내용들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다시 읽는 고전의 재미는 쏠쏠하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인 반계·성호·연암·다산 등의 대학자들의 저술은 대부분 고전인데, 그런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난제들을 풀어보는 지혜를 얻고 싶은 심정에서 출..
정조가 단군과 천부경을 찾은 까닭은기자명차태헌 기자 입력 2018.06.03 23:53수정 2018.06.22 03:38 李조선 성리학 지배질서, 우리고유선맥 숨통 조이다. 이조선, 중화질서에 자진예속함에 따라 하늘제사 금지하다중국 기자 숭배 속에서 병자호란 이후 단군 부활하다팔관회, 불교 절간의 산신각, 삼성각, 칠성각 등은 선맥仙脈의 잔영이다무교巫敎에서도 선맥이어지다사도세자 아들 정조, 생존위해 성리학 중화질서 지지하다한편으로 단군과 천부경 찾다 ▲李조선22대 왕 정조(正祖 서기1752-1800). 기울어가는 이조선 22대 왕에 올라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기득권 신권에 제압당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학문과 기예면에서 역대 어느 왕보다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잊혀져가는 선도에..
노론-식민사관 사대주의와 인맥 연결됐다[이덕일 주류 역사학계를 쏘다] ⑨ 노론사관에 일그러진 조선후기사수정 2009-07-08 15:04 등록 2009-07-08 15:04탑골(파고다)공원 전경. 조선 후기 이 일대에는 백탑파라 불렸던 박지원 한국 주류 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이 일본 식민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다면 조선 후기사 인식은 노론사관에 깊게 경도되어 있다. 몸은 21세기에 살지만 역사관은 일제와 조선 후기 노론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자기정체성 부인과 사대주의 극대화라는 점에서 인식이 같을 뿐만 아니라 인맥으로도 서로 연결된다. 노론의 뿌리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이다.일제 가담 노론 출신 일부 학자들조선사편수회 거쳐 사학계 주류로‘상공업 중심 개혁론=노론’ 왜곡 등조작된 국..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입력 2007-01-11 00:00업데이트 2007-01-11 00:00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
금관총은 처음으로 금관이 출토되어서 '금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고요,식리총은 금동 장식신발(식飾 장식, 리履 신)이 확인되어서 '식리총'(장식신발총),금령총은 금방울(금金, 령鈴 방울)이 출토되어서 '금령총'(금방울총),서봉총은 스웨덴(서전·瑞典)의 황태자(아돌프 구스타프 6세·재위 1950~73)가 봉황(鳳凰) 장식이 달린 금관을 수습해서 '서봉총',호우총은 청동제 그릇(호壺 병, 우杅 사발)이 출토되어서 '호우총'(병사발총),천마총은 천마도가 그려진 말안장이 출토되어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왕가의 무덤’으로 꼽히는 대릉원 지구에는 60여기의 고분(형태가 남아있는 고분만)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고분의 90% 이상이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무지덧널..
아직도 오리무중인 ‘위례성’의 위치 한정석 편집위원 승인 2015.01.31 01:08백제 첫 도읍인 ‘위례’의 지명을 놓고 지방자치 단체들 간에 한바탕 선점 투쟁이 일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 서울 송파구가 최근 ‘위례동’ 지명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 파열음을 내고 있는 가운데 충남 천안시가 뛰어들었던 것.천안시는 최근 백제 온조왕 사당 건립을 추진하는 등 ‘위례’ 지명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천안이 ‘위례’ 지명을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만큼 천안시만 쓸 수 있다는 입장이다.누구나 백제가 처음 건국한 도성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것쯤은 배워서 안다. 온조가 부여에서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도읍한 곳이 바로 위례성(慰禮城)이라고 는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 풍납토성 그런데 이 위례성은..
신라가 마립간시대로 넘어가기 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유적들을 알아봅니다. 경주 금척리고분군, 경주 조양동유적, 경주 사라리유적, 경주 덕천리유적들이 있습니다. 경주 금척리고분군은 대릉원의 돌무지덕널무덤(적석목곽묘)보다 1세기 앞선 4세기부터 조성된 사실이 밝혀져, 신라 6부 중 하나인 모량부가 5세기 등장한 신라중앙의 마립간에 앞서 금척리 일대를 지배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경주 조양동유적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무덤은 1981년 말 발굴된 38호 묘인데요, 무덤 내부에서 다량의 철기와 함께 중국 한나라에서 수입한 청동거울이 4개나 출토됐습니다. 최종규 학예사는 거울에 기준하여 이 무덤이 서기 1세기에 만들어진 것이고 주변에서 함께 발굴된 무덤들이 1∼3세기까지 조성된 것이라고 추정..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여왕이여 신라여 망하리라 "이름없는 자가 당대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을 지어 조정의 길목에 내걸었다."888년(진성여왕 2년) 신라의 도읍지 서라벌에서 당시의 정치를 비난하는 벽보(榜·대자보)가 붙었다.그것도 조정의 길목, 번화가에 붙은 비방문이었다. 그런데 는 "나라 사람들이 비방문을 길 위에 던졌다(書投路上)"고 했다. 는 "벽보(혹은 대자보)를 붙였다"고 했지만, 는 "전단을 뿌렸다"고 한 것이다. 어찌됐든 글 내용은 알쏭달송했다. 다라니(밀어라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밀로 하려는 주문 같은 것)의 은어로 쓰여 있었다. 진성여왕 때 서라벌 조정의 길목에 등장한 대자보(혹은 전단)의 내용을 소개한 . '진성여왕과 신라는 망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라는 이 때 소판..
가야고분군은 2023년 9월 17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고분군은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 7개입니다. 한국의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대성동고분군, 말이산고분군, 옥전고분군, 지산동고분군, 송학동고분군,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이다. 가야고분군[사진출처-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신청유산은 지리적 분포, 입지, 묘제, 부장품을 통해 다수의 개별..